오마이의 한계는 어디인가.

blueski의 이미지

누르세요.

개인적으로 두시반까지 백토를 보았지만 이 교수가 훌륭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순수한 열정과 함께 통찰력 있는 시각.

물론 그순간 마녀사냥이 시작될 거라는 짐작과 함께..

offree의 이미지

"친노언론" 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글중에 왜 친노언론 이 나오는지는 모르겠네요.

방송을 보지않아서, 그에대한 판단은 보류.

사용자가 바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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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의 이미지

다음은 이 영훈 교수가 100분 토론에서 한 문제의 발언이 나온 내용 전문입니다.

Quote:

이영훈 "역사의 진정한 청산이 무엇인지 외국의 사례 들어 설명하겠다. 사회로부터 자발적인 참여라든가 자발적이 고백에 기초하지 않으면 진정한 역사청산은 없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적극 협력한 자'라고 해서 동원에 참여하거나 이들을 관리한 업소주인들을 찾아내서 하겠다는 것인데 이 범죄에 대해 자발적인 자기고백이 없는 상태이다. 법률에 의해 국가가 특정인을 경계 지우고 죄인으로 몰아 나머지를 역사의 원죄로부터 면죄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손석희 "자기고백적 성찰은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

이영훈 "예를 들어 내가 일본 도서관에서 일본 위안부에 대해 큰 일본학자들이 조사한 많은 자료집을 보았다. 거기는 말하자면 재야사학이라는 사학자들이 참여되어 있는데 2000점 이상의 자기 고백들이 있다. 일본군에 종사할 때 그 업소를 드나들었다고 하는. 자기고백과 여러 회고록들이 있다. 일본 전체가 반성하는 차원에서 전쟁 범죄를 소화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1939년 일제 징용령이 발동해서 약 11만명의 군이 일본군에 참전했다. 그 중에 다수의 사람이 한 달에 한 번 대체로 (위안소에) 갔다왔다. 많이 이용했는데 누가 이 고백을 한 적이 있나. 그런데 몇 사람 추려서 범죄자라고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의 진정한 역사청산이겠는가. 학자 입장에서 볼 때 역사의 진정한 청산을 이런 식으로 법률적으로 구획짓기, 경계짓기, 사회 추방하기로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그리고 최근에 어떤 연구자가 한국전쟁 때 위안소가 있었다는 걸 증명했는데 한국군대가 일본군대를 배워와서 한국전쟁 때 그런 일을 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국사회는 조용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고 그 뒤에 대한민국 정부의 합법적인 지원 하에서 미군들의 위안부가 수십만 명이 있었다. 그럼 점에 대해 하등의 자기성찰적인 반성이 없이 오늘날 제기되는, 정략적으로 제기된 과거사 청산을 법률적인 문제로 경계짓기를 통해 해결한다는 자체가 연구자의 입장에서 올바른 청산이 아니다.

정치인을 택하기 전에 역사 연구자들이 사회 성찰적인 고백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정치권을 끌어들여서 정치적으로 청산한다는 것만이 진정한 청산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다. 과연 그 방법 밖에 없나."

안병욱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친일파 청산이나 역사적인 평가가 학자들 수준에서 가능했다면 왜 60년 동안 논란이 되었는가. 현재의 결과는 어떤가. 아직도 논란만 있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학문적 정리의 문제를 벗어나고 있다.

60년대 박정희 시대 문제가 당시 한일회담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 있지만 조사권한이 있고 국가 제도적인 지원의 측면이 있어야 하므로 기구화 하고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사법부처럼 수사권이 있고 재판관이 있는 그런 법률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자는 것인데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청산을 하자는 것이다."

이영훈 "금단의 어려움이 있어 정치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지금 친일진상규명법에 의해 구분된 사람들, 가령 총독부와 부속기관에 근무한 사람들을 따지면 1942년 현재 중앙과 지방기관에 17만명이 종사했다. 1910년은 그 숫자가 얼마가 될지 모른다. 파악할 수 없는 자료인가. 아니다. 매년 관련 책들이 발간되고 잇다. 서울대 도서관에도 있고 국립도서관에도 있다. 흔한 자료다.

1945년 이전 자료로서 열람이 안되는 것은 단 한 건도 없다. 이걸 자료화하면 어떤 경로를 통해 채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연구가 안되어 있다. 연구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친일군상이 재생산되었는지 밝힌 뒤 국민에게 홍보하면 거기서 성찰적인 고백과 이해가 발생한다. 자료들을 분석도 하기 전에 권력을 통해 증언을 얻어내자면..."

송영길 "지적할 게 있다. 일제 시대 정신대의 문제와 지금 미군부대의 문제를 등치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우익이 지금도 주장하는 것은 정신대가 총독부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종의 공창의 형태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이미 증거자료에 의해 정신대는 조선총독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일종의 성적 노예 상태에 놓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군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

이영훈 "누가 주장했나. 어느 학자가 주장한 것인가.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동원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송영길 "그런 자료가 지금까지 나왔는데 그걸 모르나."

이영훈 "정신대 보고서를 안 읽어보시고 하는 말인데."

송영길 "그런 총독부의 강제동원이 아니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

이영훈 "표현에는 찬성하지만 사실 인식에 있어서는..."

송영길 "일본의 주장과 같은 주장을 하는 건가."

이영훈 "그렇게 선악에 의해서 판단하나."

손석희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관계의 문제인 것 같다."

이영훈 "왜 일본과 같냐고 말하나."

손석희 "그 부분은 정리하고 넘어가자. 이 교수는 정신대 문제를 어떻게 보나."

이영훈 "정신대 관련 일본에는 2000점의 자료가 있고 그런 일본학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국내학자들이 노력도 많았지만 거기에 의존한 바가 많았다. 거기에 보면 하나의 범죄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민간인들이 가령 팸프. 한국 처녀,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다. 그 명단이 있다."

손석희 "그 명단은 일본 자료에 있나."

이영훈 "그렇다. 중국 상해주변의 그 업소들이 다 나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여자를 쇼윈도우에 가둬놓고 성매매를 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친일문제를 다룰 때 자기 성찰적으로 다루면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역사청산을 할 수 있는데 법적으로 역사청산을 하면 몇 명이 선발이 될지 모르지만..."

손석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아닌가."

이영훈 "정신대 문제와 한국전쟁과 해방 이후의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인식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다."

노회찬"일본의 책임 없다는 것인가."

이영훈 "성노예를 관리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민간인 문제를 따지지 말자는 건가."

노회찬 "아니, 그렇게 문제의 핵심을 흐려놓고..."

이영훈 "법률적으로 재단하면 실체가 흐려지고 오히려 소수사람이 희생되고... 위안소를 사용한 병사의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노회찬 "지식인들이 그런 비겁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에 역사가 청산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영훈 "그 비겁한 태도를 자기 고백적 성찰로..."

송영길 "도덕적 성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민족 행위 자체를 도덕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사회가 되버렸다."

이영훈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을 경계하자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손석희 "지금 두 분이 서로 다른 터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말이 안통할 것 같다."

송영길 "이 교수의 지적대로 고백적 성찰이 필요했지만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친일청산 상황이 없어졌고 동시에 송진우나 김구, 여운형이 암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오히려 친일분자들이 중용되면서 국가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친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상황이 되고 애국자로 둔갑했다. 반성하고 싶어도 반성할 기회가 없었다. 이제야 말로 뒤늦었지만 이제는 그 때처럼 형사적 처벌이 뒤따르는 상황이 아니므로 오히려 차분하게 역사를 되돌아볼 기회가 된 것이다."

autography

인간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brandon의 이미지

아래글들 두루두루 보시고 직접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어느것이 진실인지.... 아니 어느것이 진실처럼 보이는지...

國史는 억압이며 은폐… ‘민족’ 폐쇄성 벗어나야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3&article_id=0000014222&section_id=103&menu_id=103

자본주의 맹아는 없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327220&section_id=102&menu_id=102

성균관대 이영훈 교수, '내재적 발전론' 비판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10250&section_id=106&menu_id=106

日帝, 영구병합 목적 조선 근대화에 주력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230240&section_id=102&menu_id=102

hi ~

cjh의 이미지

저는 직접 TV토론을 보지는 못했지만,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와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견해가 부딪치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군요. 학자는 다양한 견해, 때로는 기존의 이론과 상반되는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 역할이지만, 정치가는 자신의 정파나 이익에 따라 국민들에게 잘 먹힐만한 내용을 고집하는 것이(그것도 이해관계에 따라 자주 바뀜) 당연한 것 아닌가요. 어째서 위안부 문제가 "강제 아니면 자발"의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강제=피해자의 논리", "자발=일본 우익의 논리" 중 하나의 편에 서라고 강제하는(그리고 이미 결론은 나 있는 것이, 한쪽편에 서는 쪽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에 직면합니다) 것이 가능한가요.

차라리 정치인들의 토론에 학자는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그 자리에 있던 정치인들의 목적은 당에 관계없이 자기편을 들어주냐 아니냐에만 관심있는 것이 아니던가요? 학자는 정치인이 아닌데, 왜 기존과 상반되는 견해를(그것도 나름대로의 근거 하에) 제시하려 노력하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과학자도 같이 비웃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인기있는 책 중에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많이들 읽어보셨을 것 같은데, 여기서 보여주는 조선 후기의 사회라는것이 제가 읽어볼 때에는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우리가 몰랐던 그런 어두운 면을 들춰주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보여주는 조선 후기의 적나라한 과거제 풍경 등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더군요. 그정도 사회가 (우리 사정과는 별개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던 일본 제국의 표적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결과를 맞이하기 이전이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러한 부패한 왕조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한 가정에서라면 이교수의 논리(위 기사 링크에서 보여주는)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익스펙토 페트로눔

maddie의 이미지

사학자란 놈이 그모양이라면...

그 나이먹도록 연구는 일본 책만 보고 했답니까?
한국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식민사관의 한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친일파 잡는다니깐 별놈들이 다 커밍아웃하는군요.
역시 연좌제가 필요합니다.

힘없는자의 슬픔

offree의 이미지

사관의 차이에 따라 정말 판이한 해석을 볼 수 있군요.

그것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는 것 또한 어리석다는 생각도 드네요.

처음 볼때는 왜 경제학자가 그곳에 나와 이상한 이야기를 했나 했는데. 나름대로 역사를 경제학적으로 해석할려고 노력하는 분 같네요.

cjh 님 말씀대로 그 TV 토론에 나온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역사가 어느정도 미화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일본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 할 수는 없겠죠.
식민지배가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설마 식민지배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가 몰락되는 상황이더라도 말이죠. 그것은 우리의 역사이지 그들의 역사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영훈 교수 말처럼 "자기고백적 성찰" 이 최선의 방법일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가를 따져봐야 겠죠. 실현가능하지 않다면, 이미 최선의 방법이 아닌것이 되겠죠.

이 방법이 아니면, 다른 방법은 소용없다라고 한다면, 청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옳다는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까는 의문이 듭니다.

학자로서의 견해는 좋지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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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즈의 이미지

윗글에서 볼때는 이영훈교수도...
송영길씨의 주장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도 객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영훈교수의 주장의 논리라면,
전쟁에서 학살을 일으켰더라도,
이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것을 수용할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테면, 무장공비와 피난민을 구분할 수 없는 입장에서,
어떻게 해서는 무장공비를 제거해야 하기에...
무장공비와 피난민을 함께 학살했다면,
전쟁을 이기기 위한 자에 입장에서는 합리화 될 수 있는 점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반대편에 서 있죠.

이런 것은 중도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에서 바라다 보느냐죠.

어떤 문서에 따르면,
일본이 일본령 조선에 취했던 많은 행위들이
본토와 차별된 것은 아니였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평한 대우였다는 것이고,
착취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입장에서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관찰자가 어느 이익의 편에 서 있냐에 따라서
판이하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100분토론중에..

이영훈교수가 "그렇게 선악에 의해서 판단하나." 하냐라는 발언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은
선악 즉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이분법적인 결론만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는 아닙니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사건의 경우,
미군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 다음,
이를 주민들이 용서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럼 일본 강정기와 그에 대하여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고 나아가 친일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 할까요?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지리즈의 이미지

하나더...

옛날 TV만화중에 바이오특공대라는 프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악당이 스케럽이라 부르는 사악한 천재 과학자였습니다.

어느날
특수한 전파를 발명해서 지구를 정복하는데,
스켈럽에 무조건 적으로 복종하게 하고,
전 인류가 이에 행복해 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이오 특공대들이 만난 일반인들은
최면에 걸린것 처럼 보이지만, 매우 행복해 보였고,
이른바 우리가 교과서에서 통해 상상한 "북한인민"의 모습이 었습니다.

자 질문입니다...

1.
인류에게 끊임없이 따라왔던 범죄와 증오,슬픔,시기, 전쟁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유일한 시기였을 겁니다. 더구나 모든 인류는
매우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과연 스켈럽이 인류최초로 유토피아를 실현한 것일까요?
스켈럽이 인류의 적입니까?

2.
이를 저지하는 바이오 특공대는 페쇄적인 시각의 소유자일까요?

3.
바이오특공대 쪽도 스켈럽쪽도 아닌
이것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은 어떠한 것이 될까요?

4
과연, 이것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생각이 존재할 수 있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이 달라짐에 따라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ps.
만약 3번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에게 들려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chunsj의 이미지

3번에 대한 답은 쉬운 것 같은데요? 그 전파의 영향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가 느끼는 것, 그 전파에 대한 선택, 이것이 객관적인 해석이죠. 만약 그 상태에서 인류가 나를 마취시켜 행복을 얻겠다라고 한다면 마취가, 아니라면 그 반대가,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니라면, 각자의 선택이죠.

제가 보기엔 어떤 일이든 객관적인 시각은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객관적인 시각을 양쪽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닌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한다는 것이죠. 그 경제사학자의 의견은 절대로 위안부 피해자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없고 저는 따라서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 재단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에 대한 접근 보다 이익에 대한 접근이 우선시 된다면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면 되겠죠, 이경우 진실은 이익의 뒷전이니까요. 저는 최준호님의 말씀대로 학자가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위 네티즌이라는 사람들의 테러에 가까운 의견과 그 의견을 요약 정리한 듯한 신문기사를 보고나니 더더욱 그런 확신이 듭니다. 이 경우는 진실은 뭐냐는 아무 의미 없는 니가 우리편이냐 아니냐 만이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다. 더더욱 그사람의 진의는 절대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겠죠.

지리즈 wrote:
하나더...

옛날 TV만화중에 바이오특공대라는 프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악당이 스케럽이라 부르는 사악한 천재 과학자였는데,

어느날
특수한 전파를 발명해서 지구를 정복하는데,
스켈럽에 무조건 적으로 복종하게 하고,
전 인류가 이에 행복해 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이오 특공대들이 만난 일반인들은
다소 넉이 나간 것 같지만, 매우 행복해 보였고,
이른바 우리가 교과서에서 통해 상상한 "북한인민"의 모습이 었습니다.

자 질문입니다...

1.
인류에게 끈임없이 따라왔던 범죄와 증오, 전쟁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유일한 시기였을 겁니다. 더구나 모든 인류는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과연 스켈럽이 인류최초로 유토피아를 실현한 것일까요?
스켈럽이 인류의 적입니까?

2.
이를 저지하는 바이오 특공대는 페쇄적인 시각의 소유자일까요?

3.
바이오특공대 쪽도 스켈럽쪽도 아닌
이것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은 어떠한 것이 될까요?

4
과연, 이것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생각이 존재할 수 있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이 달라짐에 따라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ps.
만약 3번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에게 들려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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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sj wrote:
3번에 대한 답은 쉬운 것 같은데요? 그 전파의 영향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가 느끼는 것, 그 전파에 대한 선택, 이것이 객관적인 해석이죠. 만약 그 상태에서 인류가 나를 마취시켜 행복을 얻겠다라고 한다면 마취가, 아니라면 그 반대가,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니라면, 각자의 선택이죠.

:( 죄송합니다만, 이해가 잘 안갑니다.

각자의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두가지 입장을 각각 개인에게 판단하게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세번째 의견이 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결국은 두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까?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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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가지,

매트릭스 1편에서인가 배신자가 하나 있죠.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기 위해서 였죠.

부 , 명예, 자본, 현실 과 환상 ..

어떤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다만 , 그 배신자가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는 이해가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을 욕하겠죠.(물론 배신했기 때문이지만요.)

이상! 위 글과 연관없는 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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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과는 별로 관계 없습니다. 우리가 불리한 사실을 밝히면 식민사관이고 유리하면 왜곡을 해야 민족사관이라면 모르겠지만, 주류를 이루는 사학자들과 그 사람과는 반대의 의견을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감정에 치우쳐 너무 한쪽으로만 보시지는 마십시오. 게다가 토론에 있어서 서로 반대편에 서 있었을 뿐이고 방법론의 차이이지 이 사람의 의견이 친일파를 잡지 말자는 아니였습니다. 몇몇만을 사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려 하지말고 우리전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조사하고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반박하다가 그런 말이 나온 것이고... 저는 차라리 어떤 방법론을 선택해서 친일청산을 해야 할 것인가 정도의 토론에 이 양반이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광기어린 자리라 학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maddie wrote:
사학자란 놈이 그모양이라면...

그 나이먹도록 연구는 일본 책만 보고 했답니까?
한국사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식민사관의 한계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입니다.

친일파 잡는다니깐 별놈들이 다 커밍아웃하는군요.
역시 연좌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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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sj wrote:
제가 보기엔 어떤 일이든 객관적인 시각은 언제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객관적인 시각을 양쪽 누구도 자신의 편이 아닌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한다는 것이죠. 그 경제사학자의 의견은 절대로 위안부 피해자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없고 저는 따라서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 재단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에 대한 접근 보다 이익에 대한 접근이 우선시 된다면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하면 되겠죠, 이경우 진실은 이익의 뒷전이니까요. 저는 최준호님의 말씀대로 학자가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소위 네티즌이라는 사람들의 테러에 가까운 의견과 그 의견을 요약 정리한 듯한 신문기사를 보고나니 더더욱 그런 확신이 듭니다. 이 경우는 진실은 뭐냐는 아무 의미 없는 니가 우리편이냐 아니냐 만이 있을 뿐인 것 같습니다. 더더욱 그사람의 진의는 절대 중요하지도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겠죠.

일제 강정기가 과연 과거사인가인 점입니다.
만약 200년 300년이 지난 다음에는
뚜렷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해당사자들이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이시점은 아직까진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냉정한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범주의 것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 이해당사자들이 살아 있고,
고통받고 있고,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해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폐쇄적인 민족사에 갖쳐 있다
혹은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 재단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았나요?
보상은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죄와 같은 정신적인 것들을 포함합니다.

결국은 이영훈교수의 의견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시점에선 수용할 수 없는 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아직도 우리들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chunsj의 이미지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면 두가지만 존재하겠죠. 그러나 일부는 자신의 의지로 사는 불행한 삶(전파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이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고, 일부는 반대를 선택한다면, 이 두가지가 섞여서 공존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강제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상황은 통일된 두 상황과는 다른 또다른 상황이므로 3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3번째와 제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공감하는, 또는 다수가 강제하는 기준에 맞추고 약간의 허용된 기준상의 변이를 "즐기면서" 살고있는 형태말이죠.

지리즈 wrote:
chunsj wrote:
3번에 대한 답은 쉬운 것 같은데요? 그 전파의 영향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가 느끼는 것, 그 전파에 대한 선택, 이것이 객관적인 해석이죠. 만약 그 상태에서 인류가 나를 마취시켜 행복을 얻겠다라고 한다면 마취가, 아니라면 그 반대가,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니라면, 각자의 선택이죠.

:( 죄송합니다만, 이해가 잘 안갑니다.

각자의 선택이라는 것은 결국 두가지 입장을 각각 개인에게 판단하게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세번째 의견이 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결국은 두가지 의견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까?

지리즈의 이미지

chunsj wrote: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면 두가지만 존재하겠죠. 그러나 일부는 자신의 의지로 사는 불행한 삶(전파의 영향을 받고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이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고, 일부는 반대를 선택한다면, 이 두가지가 섞여서 공존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강제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상황은 통일된 두 상황과는 다른 또다른 상황이므로 3가지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3번째와 제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공감하는, 또는 다수가 강제하는 기준에 맞추고 약간의 허용된 기준상의 변이를 "즐기면서" 살고있는 형태말이죠.

제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스켈럽이 나쁘다. 혹은 스켈럽은 나쁘지 않다.

이것 말고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였습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chunsj의 이미지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국인인한 어쩔 수 없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생각이고 분노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1+1이 3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사실과 상황에 대한 대처와는 분리를 해서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솔직히 그 교수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제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어지지도 않으며 그에 대한 일제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그들에게 강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객관적인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일제만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경우, 즉 그 교수가 말한대로 그에 대해서 우리도 책임이 있는 경우를 외면하거나 숨길 것인가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정치적인 행위로 끝나고 행위자체보다는 그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계속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보다는 낫기는 하겠죠. 이런 말을 해야되는 우리의 현실이 더 안타깝다고 느껴집니다. 한번 단추를 잘 못끼면 나중에 더 큰 고생을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닐까요? :cry:

지리즈 wrote:
하지만,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이시점은 아직까진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냉정한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범주의 것들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그 이해당사자들이 살아 있고,
고통받고 있고,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해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폐쇄적인 민족사에 갖쳐 있다
혹은 피해자의 의견에 따라 재단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납득할 만한 보상을 받았나요?
보상은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죄와 같은 정신적인 것들을 포함합니다.

결국은 이영훈교수의 의견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시점에선 수용할 수 없는 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아직도 우리들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chunsj의 이미지

제 답변도 간단합니다. 일단 나쁘다 또는 나쁘지 않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개체가 없으면 질문이 무효하므로, 그 개체들이, 전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전부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일부는 나쁘다, 일부는 아니다의 혼재거나 이 3가지입니다. 대답이 너무 무책임한가요? :-) 원래 질문에 제생각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나쁘다, 또는 나쁘지 않다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경우는 어떤 질문에도 위와 같은 3가지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전쟁도 없고 분쟁도 없으면 (무조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정의가 되면 나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도 그럴 수 있겠죠.

지리즈 wrote:
제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스켈럽이 나쁘다. 혹은 스켈럽은 나쁘지 않다.

이것 말고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였습니다.

지리즈의 이미지

chunsj wrote: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국인인한 어쩔 수 없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생각이고 분노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런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1+1이 3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사실과 상황에 대한 대처와는 분리를 해서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솔직히 그 교수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일제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어지지도 않으며 그에 대한 일제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그들에게 강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객관적인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일제만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든 경우, 즉 그 교수가 말한대로 그에 대해서 우리도 책임이 있는 경우를 외면하거나 숨길 것인가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들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정치적인 행위로 끝나고 행위자체보다는 그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계속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보다는 낫기는 하겠죠. 이런 말을 해야되는 우리의 현실이 더 안타깝다고 느껴집니다. 한번 단추를 잘 못끼면 나중에 더 큰 고생을 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닐까요? :cry:

제 생각에는 이영훈교수도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 서울대 사학의 국사교과서의 한국현대사 왜곡에 관련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 도저히 못찾겠습니다. 찾으면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하여튼, 제 생각에는 서울대는 사학이라는 면에서는
중립을 치킬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영훈교수에 대한 위안부에 대한 의견 또한
가해-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본질은 외면하고,
지나치게 외형적인 면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일합방이 외형적으로 충분히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한일합방은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이문열씨를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문열씨는 이것을 예로 들었을 뿐입니다.)

즉,
일본이 조선을 강정했던 사실을 외면하고 있고 있기 때문에,
종군위안부와 성매매를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지리즈의 이미지

chunsj wrote:
제 답변도 간단합니다. 일단 나쁘다 또는 나쁘지 않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개체가 없으면 질문이 무효하므로, 그 개체들이, 전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전부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일부는 나쁘다, 일부는 아니다의 혼재거나 이 3가지입니다. 대답이 너무 무책임한가요? :-) 원래 질문에 제생각에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나쁘다, 또는 나쁘지 않다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경우는 어떤 질문에도 위와 같은 3가지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전쟁도 없고 분쟁도 없으면 (무조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정의가 되면 나쁘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에도 그럴 수 있겠죠.

제가 나쁘다라는 표현을 쓴것이 잘못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유도질문을 하고 있었던 점도 인정합니다. :)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jachin의 이미지

-_-a 정말 풀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영훈 교수님쪽은 이론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매매춘 얘기를 정신대 할머니들 앞에서 얘기했다면 따귀 100대는 맞았을 겁니다. -_-

현실과 이론. 그 갭을 매꾸지 못하면 진정한 학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적 성찰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강제 징집 군사들이 위안부를 사용했다는 증명을 받아야만 우리가

학문적 객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논문에서 '우리나라 강제 징집된 군사들이 위안부를 사용했다.'는 자기 성찰의 자료가 있다고 한다면,

일본 쪽에서는 '서로 사용했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반박하면 뭐라 답하실 겁니까?

어떻게 한 뿌리로 살아온, 먼 길 삼천리 밖에서 만나고 있는 어려운 동포를

강제적으로 수탈하고 성적 노리개로 삼을 위인이 우리 조상중에 누가 있었단 말입니까?

당신의 할아버지요?

만약... 제가 더 영악하고 더 조리있게 말할 수 있다면,

친일 청산 문제든 일본의 국가범죄 행위든, 더 적나라하고 독설적으로 양심의 심판을 내렸을 겁니다.

당신의 어설픈 주장 덕분에 국내에서 판치고 있을 양심없는 인간들이 더 맘편하게 되겠군요.

fibonacci의 이미지

이영훈 교수는 이론과 도덕성을 아주 교묘하게 내세워서 과거청산에 대한 논점흐리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이야기 안해도 백토 요약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이론만 아는 엘리트" 입니다. 굳이 마녀사냥을 안해도 학계에서 왕따당할것 같군요.

No Pain, No Gain.

brandon의 이미지

3시간 이상동안 진행되는 토론회를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 보았습니다.

그때 이교수를 굉장히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추상적인 당위론만을 반복하는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뭔가 다른 각도에서 주자을 하는 모습에 대해서 귀가 솔깃하더군요.

확실한것은 일제식민지시절의 상황이 너무 과장된것은 사실이고, 역사란 것이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도구화되고 재단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일제시절 광주항일학생운동은 광주에서 일본학생이 한국여학생 희롱사건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희롱이라고 해서 대단한게 아니고 한국여학생 꽁지먹리 잡아당긴것인고 학국 남학생들과 패싸움이 붙었는데 일본경찰이 한국학생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때문에 발생한 항일학생운동인데요. 그렇다면 왜! 정신대강제 징용에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의문투성이입니다.

예전에 어느 정신대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TV프로가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로 비추어 볼때, 그당시 처녀들은 자진해서 가는 곳이 정신대인줄 모르고 간것같습니다. 그리고 이교수 말대로 한국업소 주인한테 관리를 받았고, 그곳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그러한 인신매매는 현재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교수가 비유한 '정신대 = 현재의 성매매' 가 이런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일제시대 하면 얼핏 떠오르는 단어가 착취, 억압 식민지 노예화입니다만, 이점도 정말 의문 투성이입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보면 일본 경찰 간부가 조선 여가수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명동에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큰 술집이 있고, 그 당시 건달들은 명동, 종로 일대를 놓고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조선인이 세운 큰 공장들도 건립됩니다.

식민지 노예화하고는 좀 않맞는 이야기들 아닙니까? 또하나 태평양 전쟁때 일본이 우리나라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끌고 나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짜피 일본 군인은 가미가제 특공대라고 해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민족들이고,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인데 조선인을 앞세워 총알받이 만들고 뒤에서 목숨을 부지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쓸말은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지므로 줄이겠으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교수가 틀리다면 왜! 내재적발전론측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술적으로 뭉개지 못할까요? 이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hi ~

warpdory의 이미지

brandon wrote:
3시간 이상동안 진행되는 토론회를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 보았습니다.

그때 이교수를 굉장히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추상적인 당위론만을 반복하는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뭔가 다른 각도에서 주자을 하는 모습에 대해서 귀가 솔깃하더군요.

확실한것은 일제식민지시절의 상황이 너무 과장된것은 사실이고, 역사란 것이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도구화되고 재단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일제시절 광주항일학생운동은 광주에서 일본학생이 한국여학생 희롱사건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희롱이라고 해서 대단한게 아니고 한국여학생 꽁지먹리 잡아당긴것인고 학국 남학생들과 패싸움이 붙었는데 일본경찰이 한국학생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때문에 발생한 항일학생운동인데요. 그렇다면 왜! 정신대강제 징용에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의문투성이입니다.

예전에 어느 정신대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TV프로가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로 비추어 볼때, 그당시 처녀들은 자진해서 가는 곳이 정신대인줄 모르고 간것같습니다. 그리고 이교수 말대로 한국업소 주인한테 관리를 받았고, 그곳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그러한 인신매매는 현재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교수가 비유한 '정신대 = 현재의 성매매' 가 이런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일제시대 하면 얼핏 떠오르는 단어가 착취, 억압 식민지 노예화입니다만, 이점도 정말 의문 투성이입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보면 일본 경찰 간부가 조선 여가수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명동에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큰 술집이 있고, 그 당시 건달들은 명동, 종로 일대를 놓고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조선인이 세운 큰 공장들도 건립됩니다.

식민지 노예화하고는 좀 않맞는 이야기들 아닙니까? 또하나 태평양 전쟁때 일본이 우리나라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끌고 나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짜피 일본 군인은 가미가제 특공대라고 해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민족들이고,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인데 조선인을 앞세워 총알받이 만들고 뒤에서 목숨을 부지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쓸말은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지므로 줄이겠으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교수가 틀리다면 왜! 내재적발전론측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술적으로 뭉개지 못할까요? 이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몇가지 말씀드라지자면
징용(정신대든 노동력 착취를 위한 것이든)을 피해서 저항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을 피해서 만주 등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많았었습니다. 티비에 그럴싸 하게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두번째... 티비 얘기를 하셨으니 ... 얼마전 MBC 에서 느낌표 하는 프로에서 중국 등지에 계신 일본위안부 할머니들의 귀국을 추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뒷동산에서 나물 캐다가 그대로 끌려갔습니다. 한국인이라곤 같이간 동네 처녀 5, 6 명 정도였고 다 일본인이었죠.

세번째... 식민지 노예화는 1930 대 말 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부터 시작됩니다. 1919 년 3.1 독립만세 이후 일제는 문화/유화 정책을 펴서 무조건적인 강점이 아닌 동화를 시키고, 조금 더 편하게 대해주고 .. 뭐 그렇게 나오다가 태평양 전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1930 년대 후반부터는 노예화에 들어갑니다. 그 유화/문화 정책시기에 각종 신문(동아니 조선이니 하는 신문들)도 생기고 말씀하신대로 종로엔 술집도 생기고 조신인이 세운 공장도 허가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쁜 여 가수에겐 당연히 일본인이 프로포즈도 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했던 것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였는지를 생각해보면 ... 결국은 다 일본을 위해서였죠.

일본군인은 가미가제 특공대라고 해서 일본왕을 위해서 목숨따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끝까지 밀리다보니 결국은 군부에서 '천황' 의 이름을 팔아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전쟁으로 떠밀고(일본 귀족의 자제라든가, 이런 사람들은 다 뒤에서 떠밀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떠밀면서 당연스럽게 일본보다 못한 반도인은 더 떠밀린 겁니다. 명예를 중시 ? 말도 안됩니다.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항복한 것은 원자탄 두발 때문이 아닌 1940년대 부터 일본 주변에 뿌려지기 시작한 기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다간 굶어죽게 됐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안전한 항로인 한국 - 일본 항로로만 겨우 수송선들이 다닐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더욱 더 조선은 착취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놈들이 웬만하면 다 높은 놈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학술적으로 위쪽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이라는 얘깁니다. 이병도와 그 후예들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학회 등에서 회장, 편집 이런 걸 맡아서 하기 때문에 줄기차게 우겨댈 수 있는 겁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병도 휘하에서 배운 사람들이 지금 서울대 등의 이른바 주류 대학의 교수들로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수들은 학회회원 내지는 학회의 중요한 일들을 맡아서 하고, 그 학회의 중요한 자리(회장/총무 등등)도 맡아서 하죠.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여태 우겨대고 있는 겁니다. 밀리면 자신의 친척/선배/스승/가족 등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죠.

참고자료 삼아 몇개 올립니다. 시간 나시면 읽어들 보시기를 바랍니다.

http://blog.empas.com/earkhe/3103554
http://blog.empas.com/earkhe/3103524
http://my.netian.com/~coldstar/ciritics/concepthistor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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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brandon의 이미지

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할 하등의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주장이 있는것 만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죠.

제의도는 그런 주장들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가진자들의 자기변명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교수의 발언이후에 그를 친일 매국노라고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과연 그의 이론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했고 검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TV프로는 느낌표를 찾아서 이런 쇼프로가 아니라 '이것이 인생이다.(?)' 와 같은 다큐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꽤 지적수준이 높은 할머니셨는데 처녀시절 동네 친구가 같이 돈벌거 가자고 했고 속아서 간것이고 정신대에서 자기들을 관리하던 여자가 즉 포주가 알고보니 조선인 이었고, 나중에 탈출하게 되고 집에서 그 사실을 안 부모님이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대략적인 스토리가 이렇습니다. 단순히 몇마디의 증언이 아니라 사실에 근건해서 극화를 시킨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내용입니다.

1930년대는 정확히 말하면 민족말살정치인데 경성방직공장, 평양메리야스 공장 등은 그 전에 건립이 됩니다. 그리고 식민지 노예화가 아닙니다. 구호뿐일지는 모르겠지만 내설일체, 일선동조론등을 주장하면서 조선인을 일본인화 시킨 것입니다. 일본 간부가 조선인에게 프로포즈를 한것은 단지 이뻐서라고 볼수 없습니다. 장군의 아들에서는 일본간부가 칼을 꺼내놓고 프로포즈를 받지 않으면 같이 죽자는 식이었는데, 이것은 노예들한테 하는 행동이 아니죠.

물론 다 일본을 위해서 였지만, 현재 왜곡된점이 분명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http://www.ddanzi.com/ddanziilbo/45/45so_3003.html
http://www.ddanzi.com/ddanziilbo/46/46so_3002-1.html
http://www.ddanzi.com/ddanziilbo/46/46so_3002-2.htm

hi ~

doncav의 이미지

brandon wrote:
3시간 이상동안 진행되는 토론회를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 보았습니다.

그때 이교수를 굉장히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추상적인 당위론만을 반복하는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뭔가 다른 각도에서 주자을 하는 모습에 대해서 귀가 솔깃하더군요.

확실한것은 일제식민지시절의 상황이 너무 과장된것은 사실이고, 역사란 것이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도구화되고 재단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일제시절 광주항일학생운동은 광주에서 일본학생이 한국여학생 희롱사건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희롱이라고 해서 대단한게 아니고 한국여학생 꽁지먹리 잡아당긴것인고 학국 남학생들과 패싸움이 붙었는데 일본경찰이 한국학생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때문에 발생한 항일학생운동인데요. 그렇다면 왜! 정신대강제 징용에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의문투성이입니다.

예전에 어느 정신대 할머니의 인생을 그린 TV프로가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로 비추어 볼때, 그당시 처녀들은 자진해서 가는 곳이 정신대인줄 모르고 간것같습니다. 그리고 이교수 말대로 한국업소 주인한테 관리를 받았고, 그곳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그러한 인신매매는 현재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교수가 비유한 '정신대 = 현재의 성매매' 가 이런 의도가 아닌가 합니다.

일제시대 하면 얼핏 떠오르는 단어가 착취, 억압 식민지 노예화입니다만, 이점도 정말 의문 투성이입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보면 일본 경찰 간부가 조선 여가수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명동에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큰 술집이 있고, 그 당시 건달들은 명동, 종로 일대를 놓고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조선인이 세운 큰 공장들도 건립됩니다.

식민지 노예화하고는 좀 않맞는 이야기들 아닙니까? 또하나 태평양 전쟁때 일본이 우리나라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끌고 나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어짜피 일본 군인은 가미가제 특공대라고 해서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민족들이고,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인데 조선인을 앞세워 총알받이 만들고 뒤에서 목숨을 부지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쓸말은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지므로 줄이겠으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이교수가 틀리다면 왜! 내재적발전론측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술적으로 뭉개지 못할까요? 이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분명히 정신대 문제는 일본 군부와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했음은 국제 사법 제판소와 UN에서도 확인된 사항입니다.
그런데 그 교수라는 사람은 그것을 조선내 문제로 한정지음으로 의도적으로 일본에 면죄부를 부여할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뭐에 귀가 솔깃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련 서적과 자료는 많으니까 한번 확인이라도 함 해 보세요.

그리고 착취,억압 식민지 노예화를 말씀하셨는데 그게 왜 의문 투성이인지 이해가 안가네요.
합방되고 난 다음부터 조선에서 일본으로 많은 물자들이 헐값 혹은 공출로 흘러 나갔고 2차 대전이 진행됨에 따라 그 수량도 계속 증가했습니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노임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구요. 이게 착취가 아니라고 하시면 저도 할말 없습니다.
억압이야 뭐 역사책에도 나오는 단발령,창씨개명,국어 사용금지등등 많이 있네요.
혹시 억압과 착취 노예화 이런 말을 들으시면 아오지 탄광 같은 것만 생각하시는게 아닌지요?
주권이 없는 나라의 국민은 노예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명예 어쩌고 하셨는데... 여기서는 정말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예와 무사도는 기본적으로 같은 동류 혹은 그 보다 상위 계급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 아래는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죠.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 지폐에 얼굴이 찍혀 있는 유명한 사람있습니다.
그 사람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중에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해서 조선 침략의 당위론을 세웠습니다.
그때 그 근거로 세운 것중의 하나가 반도인(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주장한 겁니다.
님이 말한 명예가 그 사람들 한테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그 명예가 조선인에게는 예외였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내재적발전론 어쩌구 하셨는데 그렇다면 2차대전 전까지 전세계의 많은 식민지화 된 나라들이 식민지화 시킨 강대국들에게 선진문물을 들여와 줘서 고맙다고 감사라도 해야 합니까?
일본이 철도를 놓고 길을 닦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수송로에 불과한겁니다. 오히려 그것을 만드는라 조선인들이 착취당한겁니다.

마지막으로 님이 말씀하시는게 어떻게 그렇게나 일본 우익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같을 수가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warpdory의 이미지

몇몇 사람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간 것이죠. 그리고 포주가 한국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 있는데, 그때라고 없었겠습니까 ?
그리고 느낌표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어설픈 다큐멘타리보다 더 다큐멘타리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타리는 그냥 있는 거 얘기하고 저 먼 곳에서 저런 것도 있다.. 정도에서 끝나지만, 느낌표는 실질적으로 뛰어다니면서 러시아/중앙아시아/중국/사할린/만주/일본 등에서 고려인 가족도 찾아 오고 위안부 할머니의 귀국도 성사시켰으니까요. 그쪽이 더 신빙성이 갑니다.

그리고 식민지 노예화 맞습니다. 내선일체니 일선동조론 등을 내세워서 노예화 시키려고 사탕발림으로 헛소리 해댄겁니다.
장군의 아들에서 나온 그 프로포즈 장면이 일반적인 장면이었을까요 ? 아닙니다. 일제시대 35 년을 통털어 몇번이나 있었을까요 ? 그리고 '장군의 아들' 이 역사입니까 ? 영홥니다. 그 영화에서는 김두환이 하야시를 무찌르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하야시 와 공존하고 하야시에게서 돈도 받고 그랬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죠.


---------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귀찮아의 이미지

귀국성사 못시키면 다큐멘터리가 아닌가요? 무슨 신빙성 이야기를...

좀 공부 좀 하고 떠듭시다

akpil wrote:
몇몇 사람들은 돈벌이를 위해서 간 것이죠. 그리고 포주가 한국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나라 팔아먹는 놈들이 있는데, 그때라고 없었겠습니까 ?
그리고 느낌표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어설픈 다큐멘타리보다 더 다큐멘타리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타리는 그냥 있는 거 얘기하고 저 먼 곳에서 저런 것도 있다.. 정도에서 끝나지만, 느낌표는 실질적으로 뛰어다니면서 러시아/중앙아시아/중국/사할린/만주/일본 등에서 고려인 가족도 찾아 오고 위안부 할머니의 귀국도 성사시켰으니까요. 그쪽이 더 신빙성이 갑니다.

그리고 식민지 노예화 맞습니다. 내선일체니 일선동조론 등을 내세워서 노예화 시키려고 사탕발림으로 헛소리 해댄겁니다.
장군의 아들에서 나온 그 프로포즈 장면이 일반적인 장면이었을까요 ? 아닙니다. 일제시대 35 년을 통털어 몇번이나 있었을까요 ? 그리고 '장군의 아들' 이 역사입니까 ? 영홥니다. 그 영화에서는 김두환이 하야시를 무찌르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하야시 와 공존하고 하야시에게서 돈도 받고 그랬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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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 wrote:
귀국성사 못시키면 다큐멘터리가 아닌가요? 무슨 신빙성 이야기를...

좀 공부 좀 하고 떠듭시다

누가 다큐멘타리가 아니랩니까 ? 어설프게 말만 앞세운 다큐멘타리보다 훨씬 낫다는 거죠. 국어 공부 좀 제대로 하고 떠드시길 권합니다. 점수를 위한 국어 공부가 아니라 의미 파악을 위한 공부를 말이죠. 신빙성 얘기는 제가 먼저 꺼낸 게 아니라 brandon 님께서 꺼낸 것이기에 한 말입니다. 위부터 잘 읽어 보세요. 슬슬 플레임으로 흘러가는 것 같군요. 주제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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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의 인사, 드래곤 라자, 이영도

즐겁게 놀아보자.

brandon의 이미지

Quote:
마지막으로 님이 말씀하시는게 어떻게 그렇게나 일본 우익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같을 수가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매우 감정적으로 접근하시니 저도 참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노회찬 의원 왈 '그럼 일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겁니까' 이교수 왈 '누가 없다고 했습니까?' 바로 이런 시각이 문제 아닙니까? 기존의 믿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 좀 다른 주장을 내세우면 일본에 대한 면죄부이고 우익이니 하는 것 말입니다.

또 한가지 잘못된 점을 시정하자면 단발령은 일본에 의해서 된것이 아니고 구한말 을미개혁으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노예라는 의미를 잘 모르시나 보군요. 조선시대 노비 아시죠? 그 신분층이 바로 노예입니다. 인간이 아니고 짐승과 같이 돈주고 사고 팔수 있으면 주인이 맘에 않들면 개인적으로 죽여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계층! 그 계층을 노예라고 합니다. 미국의 흑인노예를 생각하면 되겟지요. 주권이 없는 나라 국민이 노예라면 광복이후에도 우리는 미군정의 노예라는 의미가 되고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주권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지만, 우리는 우리힘으로 근대화 하지 않았습니다. 외세에 의해서 근대화 당한겁니다.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이고, 그들의 이용할려고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맙다고 할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라고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hi ~

offree의 이미지

brandon wrote: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지만, 우리는 우리힘으로 근대화 하지 않았습니다. 외세에 의해서 근대화 당한겁니다.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이고, 그들의 이용할려고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맙다고 할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라고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 말씀에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잖습니까?

그러나, 외세에 의해 근대화 되지 않았으면, 근대화를 할 수 없었다 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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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mc의 이미지

모든 주장들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하는가 하는것도 중요한 대목이 아닐지...

Quote:

손석희 "정신대 문제를 성매매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아닌가."

이영훈 "정신대 문제와 한국전쟁과 해방 이후의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인식이라면 대단히 유감이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간단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봤을때

자신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평가 받지 못한것을 항변할수 있을까요.

토론 내내 이교수는 이런 입장을 고수해서 보는 전 상당히 답답했습니다. :?

^^*

slayer의 이미지

이영훈 교수는 '일본 학자'가 쓴 사료에 기초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하물며 자신들의 치부를 기술하는 것이야 얼마나 왜곡되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이건 전혀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단지 일본 입장에서 편하게 사실왜곡된 사료들을 이영훈 교수는 단지 읇어댔을 뿐입니다.

그러니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라는 어이없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겁니다..

이런 주장을 소수나마 동조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참 갑갑한 일이지요..

offree의 이미지

slayer wrote:
이영훈 교수는 '일본 학자'가 쓴 사료에 기초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사실 어떤자료를 보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마나
신빙성있는 자료인가도 따져봐야 할텐데. 너무 자료에 대해 맹신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오염된 자료라면, 어떻게 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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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의 이미지

이영훈씨는
학자적인 견해를 발표한 것과 더불어 토론회에서 정치를 했다고 봅니다.
그의 정치적 견해가 '학문'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의견을 정치 모르는 학자의 순수한 학술로 볼 수 없습니다.
학자로서의 양심과 더불어 정치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맞아보입니다.

조르바와 함께 춤을....

doncav의 이미지

brandon wrote:
Quote:
마지막으로 님이 말씀하시는게 어떻게 그렇게나 일본 우익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같을 수가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매우 감정적으로 접근하시니 저도 참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노회찬 의원 왈 '그럼 일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겁니까' 이교수 왈 '누가 없다고 했습니까?' 바로 이런 시각이 문제 아닙니까? 기존의 믿고 싶은 진실에 대해서 좀 다른 주장을 내세우면 일본에 대한 면죄부이고 우익이니 하는 것 말입니다.

또 한가지 잘못된 점을 시정하자면 단발령은 일본에 의해서 된것이 아니고 구한말 을미개혁으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노예라는 의미를 잘 모르시나 보군요. 조선시대 노비 아시죠? 그 신분층이 바로 노예입니다. 인간이 아니고 짐승과 같이 돈주고 사고 팔수 있으면 주인이 맘에 않들면 개인적으로 죽여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계층! 그 계층을 노예라고 합니다. 미국의 흑인노예를 생각하면 되겟지요. 주권이 없는 나라 국민이 노예라면 광복이후에도 우리는 미군정의 노예라는 의미가 되고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주권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저도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지만, 우리는 우리힘으로 근대화 하지 않았습니다. 외세에 의해서 근대화 당한겁니다.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이고, 그들의 이용할려고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맙다고 할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사실이라고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단발령은 제가 헷갈렸습니다. 순간적으로 헷갈렸나 봅니다.
그리고 노예는 분명 님이 먼저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어느 책에서도 조선 국민이 일본인의 노예가 되었다고 주장한 것을 본적도 없고 또 저도 노예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님이 노예라는 단어를 선택했기에 주권이 없는 상태는 노예와 같다는 비유를 들었을 뿐입니다.

근데 제가 황당한 것은 분명 위에 인용하신 노회찬의원과 그 교수의 대화에서, 그 교수가 주장하는게 진실이 되려면 일본과 조선이 서로 쌍방과실 상태여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 같이 치고 받고 했을때 그 교수처럼 그런 말을 하면 이해가 됩니다만 일본과 우리의 관계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말한마디 못하고 일방적으로 맞았는데 맞은 놈도 잘못한게 많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맞은 사람 가족이 그렇게 말한 놈 의견도 일리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올바른 것인가요?

마지막으로 님이 말씀하시는 근대화가 어떠한 근대화를 말하는지는 몰라도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도로가 생기고 공장이 생기고 했으니 그것을 근대화라고 한다면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됐다고도 할수 있겠네요.
하지만 남의 나라에 들어와서 자기들 필요 때문에 길내고 공장 세우고 한것에 대해 무엇이 사실이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겁니까? 공장세우고 길 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일본이 그렇게 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고 또 그 모든 과정에서 조선 사람은 거의 대부분 저임금의 단순 노무자로만 이용당했습니다.
님은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고 그냥 인정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무엇을 인정하라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님의 그 단락에서 '고마워 할필요는 없지만'을 '고마워 해야한다'라고만 고치면 극우파의 얼굴마담격인 이치하라가 맨날 하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donsgo의 이미지

서울대 이영X교수와 강간범과의 대화(펌) 조회수:2386 , 추천:134, 반대:2
수평선넘어(thehorizon), 2004/09/03 오후 10:14:04
이영X의 딸이 밤늦게 집에 가다 강간을 당했다.....
강간 후 강간범은 5만원을 그녀에게 던져 주었고
그걸 본 양키놈의 신고로 경찰서로 끌려왔다,,,,
경찰서에서,,,,,,

이영X: 이 천하에 몹쓸 자식,,,,,퍽~퍽~,,,,,

강간범: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때리고 난리냐?

이영X: 니가 한짓이 죄가 아니면 뭐냐?

강간법: 모든 걸 선악으로 구분해 보는데 유감이다....

이영X: 이건 법적인 문제다

강간범: 남녀간의 치정을 법률로 재단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니 딸하고 서울 한복판에 있는 창녀들하고 뭐가 다르냐,,,
그년들은 날을 한번도 경찰에 신고한 적 없다....

이영X: 강제로 한 강간하고 어찌 같을 수가 있냐?

강간범: 누가 내가 강제로 씹을 했다고 하나? 성에 대한 보고서도 안 읽어
봤냐?
일단, 내 수첩을 봐라,,, 내 수첩에는 그동안 나랑 씹한 년들을 자세
히 기록해 두었다,,, 잘봐라,,, 어디를 봐도 내가 그년들을 강간했
다는 기록은 없다,,,

이영X: 먼저 수첩에 기록한 내용에 대해서는 경이를 표한다...하지만...그건
니 입장에서 기록한 거구,...
내 딸은 니가 강간한게 사실 아니냐?

강간범: 이건 경찰이 나서서 할일이 아니다.....
먼저 자기성찰적 고백만이 전정한 문제해결의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아리나 청량리를 드나둔 수많은 사람들한테도
피해를 줄수 있다....

이영X: 난 일류대 교수다 ,,, 그따위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라,,,,

강간범: 니 딸이 가끔 자위를 한다는 거 내 다안다....그게 바로 그녀도
평소에 원하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난 다만 그녀에게 성에 일찍 눈뜨게 해 그녀를 성적으로
발전시킨 죄 밖에 없다.... 억울하다.....

이영X: 내 딸은 앞으로 어떻하냐?

강간범: 니 딸을 위해서도 그냥 묻어두고 가는게 좋다....
괜히 법정으로 가봐야 니 딸 상처만 더 입는다....

이영X: 억울하지만 탁월한 식견이다.....

brandon의 이미지

Quote:
마지막으로 님이 말씀하시는 근대화가 어떠한 근대화를 말하는지는 몰라도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도로가 생기고 공장이 생기고 했으니 그것을 근대화라고 한다면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됐다고도 할수 있겠네요.

갑오개혁을 말하고, '덕분' 이란 표현은 고마울때 쓰는 것이고 이럴경우는 강압에 의해서 또는 의존해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요. 자꾸 고맙다는 표현은 왜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3.1 운동이후 일제는 잔뜩 쫄아서 통치방식을 문화통치로 전환을 하였습니다. 왠만한 문화활동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주면서 곳곳에 일제 앞잡이 즉 친일파를 양성했죠. 또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hi ~

advanced의 이미지

이 위에 윗글 쓰레기 글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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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anced wrote:
이 위에 윗글 쓰레기 글인데요

억지로 짜 맞춘 말도안되는 글이죠. 물론 재미는 하나도 없구요.

좀 그럴듯 하게 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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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ree wrote:
Advanced wrote:
이 위에 윗글 쓰레기 글인데요

억지로 짜 맞춘 말도안되는 글이죠. 물론 재미는 하나도 없구요.

좀 그럴듯 하게 쓰던가..

재미있는데요 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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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혼동, 혹은 편협된 사고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으신것 같은데..
저역시 일본과의 한일합방의 형식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가속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일본을 포함한 그당시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행위들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할수는 없습니다.
가령 누가 제 얼굴을 이유없이 가격하여 원래 약하던 이빨이 부러졌는데 그놈이 돈을 지불하여 기존의 이빨과 똑같은 오히려 성능이 좋은 이를 달게 되었고 더욱이 위자료까지 받은 경우에 그놈의 행위로 인해 결과적으로 내 이가 더 튼튼하게 되었다라고 말할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놈의 폭력행위는 정당할수가 없지요.
어쨌든 서로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근대화 인정 역시 말이죠.

그리고 이 교수가 끊임없이 주장한 것은 시대의 성찰 없이 법률에 의한 소수의 일도양단식 처벌로 인한 또다른 역사왜곡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토론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몇번이고 들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들은 반공교육도 그렇게 받아 왔습니다.
저는 언젠가 티비에서 북한에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모든 국민이 헐벗고 거지들처럼 사는줄 알았거든요.
이게 우리가 배운 역사입니다.
독도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는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땅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고 일본은 억지로 주장한다고 여겨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1900 년대 이후만 따져보면 일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고 1900년 이전의 자료들은 서로 쌤쌤이라고 보는게 타당하지요.
다만 현재 이승만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 경찰이 점령하고 있으니 이대로 몇십년 더 버텨보자 라는게 저의 솔직한 심정이고..

이렇듯 우리가 배운 역사라는 것이 극우민족우월주의 학자들이 않아서 만든것이므로 이렇게 왜곡되어 온 겁니다.

그리고 위에서 누군가가 이교수가 주장하는 것이 일본사람이 쓴 글을 보고 주장한다고 하던데..
이렇게 팩트도 모르면서 그냥 씨부리는게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이 교수는 일본사람이 쓴 소설을 본게 아니라 일본인들이 보관해온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생각을 정리한 겁니다.
물론 그 기록들은 일본에만 보관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일부 있고 게다가 한양대(?) 모 교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에 의해 검증되는 부분들도 많은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미비했을까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논리적 대비를 하지 않고 그냥 미적거려 왔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친일에 대한 터부라는 부분도 있겠습니다만은)
객관적 조사를 하면 할수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연구하다가 마는 것이지요.
제 생각입니다.

토론때 카톨릭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의 "터부"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터부중에 가장 큰 부분을 오히려 이 교수가 토론회에서 말 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왜곡된 민족적 자존심으로 뭉게 버릴수 있는 간단한 얘기가 아닌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한국의 국민성인 냄비근성으로 인해 이런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지요.

왜 이 교수가 끊임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성찰과 반성이 없다고 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민족우월주의에 사로잡히고 냄비근성으로 가득찬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 모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거지요.
자기성찰과 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 누가 마녀사냥의 대상을 하고자 자처하겠습니까?

다른 교수의 말씀처럼..

우리는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합니다.

기껏 일본놈들하고 말싸움할때 우리가 주장하는것은 무슨 근거도,기록도 아닌 우리나라 누구누구가 그렇게 주장하더라. 이것뿐이지 않습니까?
그럼 걔네들은 딱 한마디 합니다.
근거를 갖고와라.
나는 이만큼 근거를 갖고왔다.
대략 할말이 없어지죠.
에이 쪽빠리새끼 하고 욕하고 도망갈수 밖에..

slayer의 이미지

brandon wrote: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3.1 운동이후 일제는 잔뜩 쫄아서 통치방식을 문화통치로 전환을 하였습니다. 왠만한 문화활동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주면서 곳곳에 일제 앞잡이 즉 친일파를 양성했죠. 또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문화통치는 20년대에 실시했던 통치 방식입니다.

지적하신대로 3.1 운동이후 거세진 독립 운동 열기를 잠재우려, 겉으로는 유화적인 정책을 펼쳤던 것이죠.

(이 때 독립운동가중에서 변절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신대는 일본이 식민지 쟁탈과 2차 대전을 준비하던 30, 40년대부터 징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부터 일제는 문화통치를 포기하고 민족 말살 통치로 가게 되죠.

즉, 더 이상 유화적인 통치가 아니라 착취와 징집이 주가 되는 통치 방식을 30년대부터 취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대 또한 강제 징집의 형태로 모집되었고, 강제 징용이나 병사 징집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문화 통치가 식민 지배 내내 계속되었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가정입니다.

offree의 이미지

blueski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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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한국의 국민성인 냄비근성으로 인해 이런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지요.

왜 이 교수가 끊임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성찰과 반성이 없다고 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민족우월주의에 사로잡히고 냄비근성으로 가득찬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 모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거지요.
자기성찰과 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 누가 마녀사냥의 대상을 하고자 자처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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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느정도 왜곡이 되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냄비근성에 대해 그것이 원래 한민족의 기본성질이라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일제시대 , 분단국가 등을 거치면서 생겨나게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그런 아픈역사로 인해 지금의 국민성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른나라들과 1:1 로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구요.

깊이 생각해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한 것 입니다. 그것이 오랜세월이 걸릴듯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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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ree wrote:
blueski wr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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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원한 한국의 국민성인 냄비근성으로 인해 이런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지요.

왜 이 교수가 끊임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성찰과 반성이 없다고 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민족우월주의에 사로잡히고 냄비근성으로 가득찬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 모습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거지요.
자기성찰과 반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 누가 마녀사냥의 대상을 하고자 자처하겠습니까?

....
....

우리나라의 역사가 어느정도 왜곡이 되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냄비근성에 대해 그것이 원래 한민족의 기본성질이라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일제시대 , 분단국가 등을 거치면서 생겨나게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그런 아픈역사로 인해 지금의 국민성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른나라들과 1:1 로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구요.

깊이 생각해보고,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한 것 입니다. 그것이 오랜세월이 걸릴듯 하지만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현재의 냄비근성들에 대한 감정적 표현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들과 연광성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고요. 갈수록 심해지는 듯한 모습에 대한 강한 반발성 멘트라고 여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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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학교 다닐때 가장싫어한 과목.. ^^)

지난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이 현재의 우리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의 모습이 미래를 만들겠구요. 이번 친일청산에 관한 것은 단순히 현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우리들이 해야 할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여기저기 듣고,보고 하면서 짧은 시일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네요.(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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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3.1운동의 영향이 20년대 당대에만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20년대 문화통치 30년대 민족말살통치.. 이런것들이 중요한게 아닐텐데요... 문화통치니 뭐니 하는 단어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3.1운동으로 우리민족이 수틀리면 죽창들고 엎어버리는 파괴력을 일제에 확실이 심어주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제가 틀렸다는 이유로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구요. 또한 문화통치기간이 계속 지속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3.1운동이 일본에게 그만한 각인을 심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문화통치 부분을 빼고 똑같이 질문을 올려보죠.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slayer wrote:
brandon wrote: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문화통치는 20년대에 실시했던 통치 방식입니다.

지적하신대로 3.1 운동이후 거세진 독립 운동 열기를 잠재우려, 겉으로는 유화적인 정책을 펼쳤던 것이죠.

(이 때 독립운동가중에서 변절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신대는 일본이 식민지 쟁탈과 2차 대전을 준비하던 30, 40년대부터 징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부터 일제는 문화통치를 포기하고 민족 말살 통치로 가게 되죠.

즉, 더 이상 유화적인 통치가 아니라 착취와 징집이 주가 되는 통치 방식을 30년대부터 취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대 또한 강제 징집의 형태로 모집되었고, 강제 징용이나 병사 징집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문화 통치가 식민 지배 내내 계속되었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가정입니다.

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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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on wrote: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자꾸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어떤 답을 듣기를 원해서인지요?

즉, 첫째 일제는 강제가 아닌, 일본앞잡이를 이용해 속여서 징집하였다.
둘째 현재의 친일파 잔재들이 일본이 강제로 했다고 왜곡하고 있다.

이런 답을 원하시는 듯 합니다. 그런지요?

어느것이 답인지 저도 모르겠지만, 사실을 밝혀내고, 그 사실에 자발적 성찰이 필요하던, 법 집행이 필요하던, 그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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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on wrote:
그럼 3.1운동의 영향이 20년대 당대에만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20년대 문화통치 30년대 민족말살통치.. 이런것들이 중요한게 아닐텐데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제가 틀렸다는 이유로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구요. 문화통치 부분을 빼고 똑같이 질문을 올려보죠.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글쎄.. brandon님은 결국 '일제는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 강제 징집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추측을 하시는 것이군요.

물론 이런 추측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료가 빈약하다면 어느 정도 먹힐 수 있는 주장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가 빈약한 유물들을 가지고 고조선 시대를 추측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러나 말이죠.. 정신대는 아직도 해당 피해자가 생존해 있고, 그들이 증언하는 바는 강제 징집이었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문화 통치와 민족 말살 통치을 논하는건 매우 중요하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20년대와 30, 40년대의 일제는 통치 방식이 달랐습니다.

20년대에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착취, 강제 징집할 필요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30, 40년대에는 전쟁준비로 인해 인적, 물적으로 착취했다는 것은 또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정신대 문제또한 그 중 하나이구요.

즉, brandon님이 제기하신 문제들은 이미 국사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역사적 사실이 규명된 상태입니다.

(문화 통치, 민족 말살 통치.. 이런 말은 국사 시간에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걸 가지고 이러지 않았을까? 식의 추측은 사실 근거가 빈약해서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않죠.

이영훈 교수가 비난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neonrain의 이미지

brandon wrote:
그럼 3.1운동의 영향이 20년대 당대에만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20년대 문화통치 30년대 민족말살통치.. 이런것들이 중요한게 아닐텐데요... 문화통치니 뭐니 하는 단어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3.1운동으로 우리민족이 수틀리면 죽창들고 엎어버리는 파괴력을 일제에 확실이 심어주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제가 틀렸다는 이유로 모든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데 동의할 수 없구요. 또한 문화통치기간이 계속 지속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3.1운동이 일본에게 그만한 각인을 심어주었다는 의미입니다. 문화통치 부분을 빼고 똑같이 질문을 올려보죠.

제가 몇가지 의문점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저도 명확한 답을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일제는 조선을 좀더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조선역사도 열심히 연구했고, 조선인의 민족성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노력했겠지요. 물론 시대별로 끊이지 않았던 농민봉기에 대해서도 연구했겠지요. 그런 일본이 정신대로 처녀를 착출하는 방법으로 강제로 끌고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아니면 일제 앞잡이를 동원해서 돈몇푼 쥐어주고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 꼬셔서 편하게 끌고 가는 방법을 택했을까요?

둘째, 첫째의 정신대 동원방법 두가지 중에서 그당시 친일파로 활동했던 앞잡이 들은 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후자를 주장하고 싶을까요?

뭐가 되었던 이러한 일들이 생긴 근본원인은 일제가 침략했기 때문이지요. 일제가 강제로 조선을 침략했다는 사실 하나만은 변함없습니다. 과도한 피해의식도 그들이 침략했기 때문에 생긴거 아닌가요.

blueski의 이미지

Quote:

정신대 문제또한 그 중 하나이구요.

즉, brandon님이 제기하신 문제들은 이미 국사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역사적 사실이 규명된 상태입니다.

(문화 통치, 민족 말살 통치.. 이런 말은 국사 시간에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걸 가지고 이러지 않았을까? 식의 추측은 사실 근거가 빈약해서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않죠.

이영훈 교수가 비난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영훈 교수가 추측에 근거했다는 말인지 아님 통치형식에 대한 오해가 있다는 말인지요.....
오히려 이 교수는 송영길 의원의 예단을 지적하였습니다.

brandon의 이미지

Quote: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강제징집도 물론 있었겠지요. 조선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강제징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Quote:

즉, brandon님이 제기하신 문제들은 이미 국사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역사적 사실이 규명된 상태입니다.
이영훈 교수가 비난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국사 교과서가 유교경전입니까? 회차가 거듭될수록 역사적사실에 대한 기록내용도 조금씩 변하는게 우리나라 국정교과서 입니다.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사는 발전이 없어야죠. 이영훈 교수주장이 근거가 빈약하다고요?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10250&section_id=106&menu_id=106

한번 읽어보세요 누가 집중포화를 맞았다고 나와 있는지..

hi ~

지리즈의 이미지

위 기사... 좀 이상하군요...

Quote: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식민 치욕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공리주의적 선택에서 실패한 결과이지, 일본이 강포한 악의 세력이기때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은 어떻게 된거죠?
이것도 조작인가요?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blueski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위 기사... 좀 이상하군요...

Quote: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식민 치욕의 역사는 조선왕조의 위정자와 지식인들이 공리주의적 선택에서 실패한 결과이지, 일본이 강포한 악의 세력이기때문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명성왕후 시해사건은 어떻게 된거죠?
이것도 조작인가요?

제 생각으론 식민지 하의 일제의 악랄한 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이 아니더라도 어느 열강에 의해서건 식민치욕의 역사를 겪을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처럼 국민들에 선택에 의한 정권이 창출되는 정당성 있는 나라가 아니라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위정자가 국민들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sangu의 이미지

위안부 v. 천황

1. 민간 여성 특수법정의 판결

네델란스 헤이그 국제 전범 재판을 위한 여성 특별 재판소는 지난 2000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 종군 위안부 소송에서 일본 천황과 제국군대를 낸 종군 위안부 재판에서 강간과 고문 그리고 노예화등의 명목등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특별 법정은 태령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되었던 성 노예화및 기타 전쟁범죄들을 조사하여 심판하기 위한 것으로 아시아 여성, 인권단체들이 ( 일본계 단체 다수포함) 국제 비정부 기구들의 후원아래 조직한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기타 정부는 이 법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관할권도 집행력도 없는 판결이었지만 정부가 타당한 행동에 실패했을때 민중은 직접 개입할수 있다는 판결문의 서두처럼 그 상징적 의미는 크다.

판검사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이 재판부는 전 유고 전범 재판장을 역임한 미국 출신의 가브리엘 커크 맥도날드 판사가 주재하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리아 칼멘 아길베이, 영국의 크리스틴 친킨, 케냐의 윌리 무통가 판사등 국제적으로 저명한 법률가들이었다. 재판부는 소화( 히로히토) 천황과 태평양 전쟁시 수상이던 도조 히데키 장군 그리고 8명의 중심 장성등 10인에 대해 모두 반인륜적 전쟁범죄로 유죄를 선고함과 동시에 현 일본정부는 과거 제국군대의 정신대 위안부 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피고 10인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흥미로운 것은 재판 소송중 제기된 사실관계 증언이었다.

재판부는 1937년-45년에 이르는 동안 약 20만명의 여인들이 종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조직적 성 착취에 복무한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중 일부는 중국, 말레이지아, 한국, 필리핀 등에서 납치 되었다고 밝혔다.

십수년전 정신대 문제를 최초로 폭로한 남한의 김학순 할머니도 이 법정에서 증언했으며 이외에도 법정은 중국, 인도 네시아, 일본, 네델란드, 필리핀과 대만 티모르 등지에서 온 증인 35명의 증언을 청취했다. 증인중 하나인 북한 출신의 김영숙 할머니는 처음 정신대에 끌려갔을때 12세였다면서 지금 7순이지만 아직도 일본군을 증오하며 용서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재판에 출석한것은 금전적 보상이나 동정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면서 자신이 청춘과 인생을 어떻게 빼앗겼는지 폭로 하기 위해 나왔다고 증언했다.

이중에는 익명의 마담 X로 법정이 신원을 보호한 증인은 말레이지아 화교 출신으로 그녀는 부친이 일본군에 의해 총격 사망하고 어머니가 강간 살해당한후 일본군에 의해 납치된뒤 위안소로 넘겨져 정신대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유럽인 잔 루프 오헤어런 여사는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던 44년 당시 21세로 수녀를 지망했으나 정신대 생활을 하게된다. 백인인 그녀는 동양인 정신대와는 달리 장교전용 서비스를 해야 했으며 자신을 정기 검진하던 군인관과 강제로 잠자리를 해야 했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의사를 두려워한다고 증언했다.

이 재판에서 말레이지아 출신의 줄리엣 체나우드 검사는 일본정부가 지속적으로 수사 방해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고 일본을 비난했다. 3백만명의 군인이 참전했지만 오직 두명만이 이날 법정에서 목격자로 진술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신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32년 난징 학살 때 부터 였다면서 그때부터 일본 군부는 반일세력들이 성병등을 가진 매춘부나 스파이등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을 약화시킬수 있음을 우려, 정신대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또한 가장 강력한 물적 증거로써 당시 부수상의 인장이 찍힌 보고서가 있다고 밝혔는데 거기에는 사병들의 더 많은 성 적쾌락을 필요로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여성들을 군대로 공수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일본측의 방어 논리인 공소시효 만료론과 공직자 면책론 그리고 전후문제 처리협정론등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정치 협정이나 조약을 통해 개인을 상대로한 반인륜 범죄는 무시하거나 사면할수 없다>는 논리로 부정했다.

재판부는 일본정부가 위안소 문제를 철저이 조사해 모든 기록을 공개하는 한편 관련자를 색출 처벌해야 하며 이를 학생들 교과서에 삽입하고 정신대 화해위원회를 구성해 정신대 문제의 사후수습을 도모함과 동시에 정신대 피해자 이름으로 기념탑과 박물관 그리고 도서관등을 세워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정은 또 미국정부에 대해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뒤 위안부 범죄를 수사, 전범 기소하는데 실패한 것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원고측이 제시한 혐의중 기각된 사항은 히로히토 천황이 필리핀 민간 마을에서 자행된 강간 학살에 개인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 뿐이었다. 학살이 너무 신속히 자행되었기 때문에 천황이 이를 사실상 알수 없었다는 판단이었다.
일본은 오직 1933년 정신대 위안소가 존재 했었다는 것만을 인정할 뿐이다. 일본은 1955년 아시아 여성 기금을 조성해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고 있지만 이는 민간차원의 기금이다.

특수법정은 헤이그 국제 사법재판소가 권고판결을 (advisory opinion) 내줄것을 권장했지만 구속력이 없었고 헤이그도 따르지 않았다. 일본은 유엔의 돈줄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판결을 무시했으며 이 재판의 바로 한달 정도 전에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정부가 정신대 문제를 지원하지 않을 것을 공개선언 했다. 그러나 행정부의 뜻과는 달리 정신대 재판은 1년후 미국 연방법원에서 열린다.

2. 미국 연방 항소 법원 판결

2001년 10월 미 연방 항소 법원에서는 일제 시대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시아 여성 피해자들에 제기한 집단 민사 소송 ( 클래스 액션) 최종공판이 진행된다.

정신대 소송이 어쩌다 미국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일까?
2000년 11월 일본 고등법원이 정신대 위안부 출신이 송신도 할머니 (당시 78세)가 제기한 10만 8천불의 보상과 정부 사과 요구의 민사 어필 청원을 기각하면서 마지막 법정으로 미국이 선택된 것이다. 원래 소송의 피고와 원고는 반드시 모종의 당자관계가 있어야 한다. 원고는 본래 일본과 당자관계가 있었으나 일본이 미국에 항복했으므로 미국 법원에 다시 어필 청원을 한 것이다. 부시의 <정신대 캠페인에 미국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포는 이를 염두에 두고 이미 미-일간에 조율된 애드발룬을 미리 띠운 것이었다. 당연히 미 국무부는 피고인 일본정부에 연대해 공동 변론을 펼친다.

이 사건의 공판기록은 사연이 많다. 먼저 원고인 정신대 할머니들이 미 시민이 아니고 사건자체가 미국인과 관련이 없으며 미국영토 안에서 일어나지 않은 관계로 관할권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원고측 변호인은 잠자고 있던 212년 전통의 외국인 민사 소송법을 부활시켜 그 힘과 권위를 법원에 상기시켜야 했다. 외국인 민사 소송법은 (Alien Tort Claims Act) 외국인이라 해도 미국 법원에서 서로 소송할수 있도록 규정한 것으로 오직 인권 위반 사례에서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마침 2000년 미 의회는 국제사회에서 매춘목적의 여성 교역을 금하는 법안을 통과한 시점이었으므로 이 주장에는 힘이 실렸다.

이 재판은 재판 시작전 케이스 검토 단계의 예심 청문회 부터 양편이 긴장한 가운데 시작된다. 중심이슈는 주권 면책권에 대한 해석이었다. 아무리 피고인 일본정부가 잘못했어도 일본정부가 제소된 사안에 대해 주권 면책권을 갖는다면 미국 법정은 판결을 강제할수 없기 때문에 재판은 하나마나이므로 이경우 판결은 기각으로 (Dismiss) 나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미국 불간섭 발언에 이어 미 행정부는 정신대가 참혹한 고통을 당했음을 인정하나 일본은 주권 면책권이 있으므로 미국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는 내용의 <이해관계 증명서>를 (Statement of Interest) 재판 5개워전 법원에 미리 송달한다. .

예심 청문회는 8월 1일, 이자리에서 일본은 주권 면책권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1) 미국이 전통적으로 1952년전 사안에 대해서는 주권 면책권을 인정해 왔으며 2) 미국의 외국 주권 면책권법을 소급적용할때 면책권 예외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국무부를 통해 피고 일본정부에 연대했으며 일본의 주권 면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측 변호인은 Michael Hausfeld 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1926년 에서 1952년 사이에 법원은 면책권 관련 케이스를 사안별로 국무부를 통해 유예했으며 국무부는 우방국들에 대한 면책권만을 권고했으므로 만일 당시 법이 적용된다면 일본은 우방국아 아니었으므로 주권 면책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2) 만일 외국 주권 면책권 법안이 소급 적용된다면 조문이 명시한 4개의 예외조항이 작동해야 한다.

이날 심사는 결국 외국 주권 면책 법안의 예외조항이 논의되었고 이는 국제법을 극심하게 위반했을경우 내재적 면책 포기 효과가( Implied waiver of immunity) 작동하는가의 여부에 집중되었다.

워싱턴 디씨 연방 어팰레트의 헨리 케네디 주니어 판사는 정신대 위안부들의 고통을 인정했으나 관할권을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일본이 종전협정에서 주권 면책권의 포기에 서명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일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주권 국가로써 일본의 면책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슈는 면책권같은 법리 공방이 아니라 이 사건이 갖고 있는 정치 외교적 특수성이었다.

<...본 법정이 원고가 반세기전 사건의 재심을 요청할 타당한 관할법원이 아니라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위안부 문제는 관련국 정부 당사자들이 직접대화를 통해 외교적으로 처리할 문제..> 라는 것이 그의 의견서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할머니들은 정말 진 것일까?

3. Issue On Merit

민간 여성특수 법정에서 할머니들은 완벽하게 이겼으며 일본은 민. 형사상의 책임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민사로 진행된 미국법정에서 할머니들은 순수 절차상의 문제로 소를 기각당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사건의 본질상 가장 중요한 사실판단에서 이긴 것이다.

사건을 기각한 연방법원은 이번 사건은 일본이 아시아 점령기 시절 일본정부의 분명한 잘못 (egregious conduct)에 초점을 마추고 있다면서 그 잘못은 성 노예화와 제도적 차원의 대규모 강간이라고 판결문에 명시해 놓았다. 25페이지에 달하는 기각 판결문에서 케네디 판사는 거듭해 여성들에 대한 학대가 있었음을 언급하면서 <위안소에 있는 동안 여성들은 반복적으로 강간당했으며 때로는 하루 30-40명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가 하면 고문과 매질을 당했고 신체일부를 절단당하거나 심지어 피살당하기 까지 했다고 썼다. 그는 또 일제는 힘으로, 강압으로, 혹은 속임수를 통해 주로 어린여성들을 끌어갔으며 정신대 위안부를 군대 소모품으로 취급했다면서 심지어 조달목록 대장에 ( catalog for the military supplies) 탄약이라는 명목으로 기입되기도 했다고 확인했다.
그는 판결문의 결론에서도 보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상의 이유로 본 법정은 원고가 추구하고 또 그들에게 당.연.히. 돌아갈 보상을 제공해 줄수 없다...: redress they seek and deserve>

심지어 일본과 연대 변론을 펼친 미 국부무 소속의 변호인 데이빗 앤더슨 마저 케이스는 관련국 내정문제에 속할법한 이슈라고 초를 치면서도 미국 정부는 정신대 문제를 대규모 잔학행위( atrocity in mass scale)로 보고 있다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우회적으로 비친 것이었다. 물론 미국에도 Res Judicata나 Collateral Estoppel 이라는 한국의 일사부재리 같은 소송원칙이 있지만 순수 관할권상의 문제로 기각당한 경우 재소송이 가능하며 Negative Effect가 작동해 오히려 원고는 유리해 진다. 긴 판례를 읽고 긴 글로 엉터리 번역겸 소개를 했지만 만일 원고가 미국시민이었거나 지구상 어딘가에 가상의 타당한 관할권 즉 판결을 일본에 집행할수 있는 법원이 존재해 재소송 했다면 이긴 케이스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해 질 뿐이다.

fender의 이미지

음... 왠지 이교수나 이교수의 주장을 옹호하시는 분들은 문제의 본질을 빗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위안부가 강제 징집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굳이 반론을 제기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 조차 시인한 사실이고, 엄연히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마당에 이를 부인한다면 그 근거는 위와 같은 명백한 사실들을 반박하는 측에서 제시해야할 문제입니다.

이교수의 언행은 한마디로 절도범이 현장에서 잡혔는데 범인도 자백했고 피해자 진술도 일치한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가 없다. 저 사람이 범인이란 증거를 대라"고 윽박지르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어쨌든 문제의 본질은 위안부가 강제 동원됐고 아니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점에서 친일 규명이 필요한지 아닌지가 그 핵심입니다. 이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친일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자발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기 전까지는 정부차원에서 이를 규명도 처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멋대로 '사회 성찰적인 고백'이니 어쩌니 이름을 붙이지만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얼 어쩌겠다는 대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리자는 건가요? 적극적으로 친일 행각을 벌였던 사람들이 50년 넘게 침묵하다가 이제 몇년만 더 있으면 당사자 들은 다 나이들어 죽을테니 유언으로 고백이라도 할거라는 말인지... 그에 비하면 친일 진상규명법은 나름대로 원칙과 절차에 대해서 구체적인 규정을 시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교수는 가해자인 일본인은 이교수가 정의한 '자기 성찰적 고백'을 이미 충분히 수행해 왔다고 하는데, 해마다 1급 전범들이 안치된 신사를 총리자격으로 참배하는 고이즈미나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들이 얼마나 '성찰적 고백'에 충실했는지 궁금하군요.

같은 대학 어떤 얼빠진 교수는 이교수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보고 '칼을 들고 찔러라'고 말했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면 그 때도 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범인의 '자기 성찰적 고백'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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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ayer의 이미지

brandon wrote:
Quote: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강제징집도 물론 있었겠지요. 조선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강제징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도 추측성으로 쓰셨군요.

문제의 핵심은 정신대가 강제 동원이냐, 민간인 포주에 의한 공창이냐 하는 것인데..

여지껏 정신대 할머니들과 역사 연구에 의해 강제 동원이라는게 밝혀진 마당에..

일본측 주장에 기초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 있을까요?

그의 주장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신대 할머니의 증언 또한 부정하는 셈입니다.

사실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brandon wrote:

국사 교과서가 유교경전입니까? 회차가 거듭될수록 역사적사실에 대한 기록내용도 조금씩 변하는게 우리나라 국정교과서 입니다.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사는 발전이 없어야죠. 이영훈 교수주장이 근거가 빈약하다고요?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10250&section_id=106&menu_id=106

한번 읽어보세요 누가 집중포화를 맞았다고 나와 있는지..

이거 이슈가 확장될 조짐을 보이는군요..-_-;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식민지 근대화론.. 저도 일부 동감합니다.

본래 의도는 전쟁이 목적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철도같은 사회 간접 자본이 약간이나마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한게 크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말이죠. 그런다고 일본의 강제 징집, 착취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즉, 일제가 조금이나마 우리나라에 기여한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은 조금도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지나치게 일본측 주장에 탐닉한 나머지, 그들의 만행도 미화시키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건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blueski의 이미지

fender wrote:
음... 왠지 이교수나 이교수의 주장을 옹호하시는 분들은 문제의 본질을 빗겨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위안부가 강제 징집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굳이 반론을 제기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 조차 시인한 사실이고, 엄연히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마당에 이를 부인한다면 그 근거는 위와 같은 명백한 사실들을 반박하는 측에서 제시해야할 문제입니다.

이교수의 언행은 한마디로 절도범이 현장에서 잡혔는데 범인도 자백했고 피해자 진술도 일치한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저 사람이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가 없다. 저 사람이 범인이란 증거를 대라"고 윽박지르는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어쨌든 문제의 본질은 위안부가 강제 동원됐고 아니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점에서 친일 규명이 필요한지 아닌지가 그 핵심입니다. 이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친일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두 '자발적'으로 고해성사를 하기 전까지는 정부차원에서 이를 규명도 처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멋대로 '사회 성찰적인 고백'이니 어쩌니 이름을 붙이지만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얼 어쩌겠다는 대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리자는 건가요? 적극적으로 친일 행각을 벌였던 사람들이 50년 넘게 침묵하다가 이제 몇년만 더 있으면 당사자 들은 다 나이들어 죽을테니 유언으로 고백이라도 할거라는 말인지... 그에 비하면 친일 진상규명법은 나름대로 원칙과 절차에 대해서 구체적인 규정을 시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교수는 가해자인 일본인은 이교수가 정의한 '자기 성찰적 고백'을 이미 충분히 수행해 왔다고 하는데, 해마다 1급 전범들이 안치된 신사를 총리자격으로 참배하는 고이즈미나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들이 얼마나 '성찰적 고백'에 충실했는지 궁금하군요.

같은 대학 어떤 얼빠진 교수는 이교수의 주장을 옹호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보고 '칼을 들고 찔러라'고 말했는데...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면 그 때도 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범인의 '자기 성찰적 고백'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궁금합니다.

일본정부가 시인했다는게 조선총독부의 강제징집을 시인했다는 것인가요?
사실 저 역시도 님과 같이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얘기라는데는 동의합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과거의 전쟁은 항상 부녀자의 겁탈부터 시작하여 그런 만행이 자행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이교수는 강제로 징집되지 않은 무수한 인원의 위안소가 국내 사람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는 말을 강조한거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 미군위안소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자칫 역사적 평가로부터 면죄부를 받아 자유로워질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를 한 것이고.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논점이 이렇게 벗어나게 된 이유가 애초의 마녀사냥 때문이었습니다.
이 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한 내용을 거두절미하고 자극적이고 왜곡된 내용을 퍼트린 쓰레기 언론이 있기때문이지요.

그리고 그는 자기성찰적 반성과 함께 이미 모든 기록의 열람과 함께 데이타베이스만 제대로 투자하여 갖추어도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날 거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인에 의한 역사 왜곡이 아닌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장 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참고로 신사참배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이 조금 다르더군요.
신사 라는 곳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그곳이 전범들만을 보관하는 곳도 아니고 말이죠.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개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위패는 있지만.)
즉, 신사 자체에 대한 개념이 우리랑 다른거죠.
그러면 우리가 그들보고 거기 신사에서 전범들은 분리하여 다른데 모셔라 라고 요구할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겐 그들이 분리 될수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부분은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조금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 그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blueski의 이미지

저는 바쁜일이 있어서 이만..
혹시 제 글을 인용해도 오늘은..
그럼.

지리즈의 이미지

blueski wrote:
그리고 참고로 신사참배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이 조금 다르더군요.
신사 라는 곳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그곳이 전범들만을 보관하는 곳도 아니고 말이죠.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개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신사 자체에 대한 개념이 우리랑 다른거죠.
그러면 우리가 그들보고 거기 신사에서 전범들은 분리하여 다른데 모셔라 라고 요구할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겐 그들이 분리 될수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부분은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조금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 그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전범의 위패가 안치된 신사에
고이즈미가 참배하는 것에 문제시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각과 우익이 아닌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blueski님의 설명이 일본 우익이 우익이 아닌 일본인들에게
펼치는 논리와 같군요.

히틀러의 묘지에 독일 총리가 참배하는 것과 하등차이가 없습니다.

특히 전범이 안치되어 있거나 아니거나 여부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천황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야스쿠니 신사는
그 자체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이기 때문이죠.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blueski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blueski wrote:
그리고 참고로 신사참배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일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이 조금 다르더군요.
신사 라는 곳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그곳이 전범들만을 보관하는 곳도 아니고 말이죠.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개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신사 자체에 대한 개념이 우리랑 다른거죠.
그러면 우리가 그들보고 거기 신사에서 전범들은 분리하여 다른데 모셔라 라고 요구할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겐 그들이 분리 될수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부분은 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조금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 그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전범의 위패가 안치된 신사에
고이즈미가 참배하는 것에 문제시 여기는 일본인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각과 우익이 아닌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시각과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blueski님의 설명이 일본 우익이 우익이 아닌 일본인들에게
펼치는 논리와 같군요.

히틀러의 묘지에 독일 총리가 참배하는 것과 하등차이가 없습니다.

특히 전범이 안치되어 있거나 아니거나 여부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천황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야스쿠니 신사는
그 자체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이기 때문이죠.

금새 답글을 다셨기에 이 답글까지만..
신사 라는 개념과 특히 야스쿠니 신사 그리고 그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위패들..
그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것과 조금 다르십니다.
얼마나 많은 위패가 거기 모여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일부만 따로 떼어내라고 주장할수 있는지...
저는 사실 이 부분은 회의적입니다.

지리즈의 이미지

blueski wrote:

금새 답글을 다셨기에 이 답글까지만..
신사 라는 개념과 특히 야스쿠니 신사 그리고 그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위패들..
그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것과 조금 다르십니다.
얼마나 많은 위패가 거기 모여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일부만 따로 떼어내라고 주장할수 있는지...
저는 사실 이 부분은 회의적입니다.

제 글을 읽으셨는지 회의가 드는군요...

일본에 신사는 널려 있죠.
총리가 아무 신사에 가는 것은 문제가 안됍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은 얘기가 다르죠.

제 글에서 언급했듯이...
전범위패가 있던 없던,
야스쿠니 그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질물이기 때문이죠...
전범위패가 있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sangu의 이미지


"정신대는 한국업소 주인들이 관리... 조선총독부 강제동원, 누가 주장하나"

Quote:
이영훈 "정신대 관련 일본에는 2000점의 자료가 있고 그런 일본학자들에 경의를 표하고, 국내학자들이 노력도 많았지만 거기에 의존한 바가 많았다. 거기에 보면 하나의 범죄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권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민간인들이 가령 팸프. 한국 처녀, 한국 여성들을 관리한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다. 그 명단이 있다."

이영훈씨는 권력(일제)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범죄까지 언급하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아직까지 그런한 정신대 또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학계의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도 있구요.

fender의 이미지

blueski wrote:
일본정부가 시인했다는게 조선총독부의 강제징집을 시인했다는 것인가요?

93년 일본 내각관방장관이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동원 됐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며 비슷한 수준의 증언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blueski wrote:
지금은 모르겠으나 과거의 전쟁은 항상 부녀자의 겁탈부터 시작하여 그런 만행이 자행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겠지요.
하지만 이교수는 강제로 징집되지 않은 무수한 인원의 위안소가 국내 사람에 의해 관리되어 왔다는 말을 강조한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무슨 의도로 이 교수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잘못이 있으니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건지, 먼저 우리부터 반성을 하자는 건지, 또 반성, 아니 이교수 말대로 '사회 성찰적인 고백'이란 것은 어떻게 하자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판단으로는 이런 주장은 친일 규명 주장에 대한 '물타기'를 위한 전락이란 생각밖에 안드는 군요.

blueski wrote:
그리고 그는 자기성찰적 반성과 함께 이미 모든 기록의 열람과 함께 데이타베이스만 제대로 투자하여 갖추어도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날 거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인에 의한 역사 왜곡이 아닌 역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요구한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장 을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 것이 친일 규명법의 핵심내용이 아니었던가요? 실체도 불분명한 '자기성찰적 반성' 운운은 제쳐두고 보면 한마디로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친일 행적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주장인데, 바로 그게 친일 규명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작업은 100% 민간 기구가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그 타당성은 그렇다고 쳐도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이 심히 잘못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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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blueski wrote:

금새 답글을 다셨기에 이 답글까지만..
신사 라는 개념과 특히 야스쿠니 신사 그리고 그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진 위패들..
그 내용이 제가 생각하는것과 조금 다르십니다.
얼마나 많은 위패가 거기 모여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일부만 따로 떼어내라고 주장할수 있는지...
저는 사실 이 부분은 회의적입니다.

제 글을 읽으셨는지 회의가 드는군요...

일본에 신사는 널려 있죠.
총리가 아무 신사에 가는 것은 문제가 안ㅤㄷㅙㅂ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은 얘기가 다르죠.

제 글에서 언급했듯이...
전범위패가 있던 없던,
야스쿠니 그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질물이기 때문이죠...
전범위패가 있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만일 님처럼 전범위패를 없애도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국립묘지도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요?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에 대한 참배를 문제삼는것은 좀 그런것 같은데요.

지리즈의 이미지

전에 딴지에 올라왔던 내용입니다.

한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니들이 감히 역사왜곡을 말하느냐?
니들이 감히 역사왜곡을 말하느냐 (2)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brandon의 이미지

Quote:
brandon wrote:
Quote: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강제징집도 물론 있었겠지요. 조선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강제징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도 추측성으로 쓰셨군요.

허허~ 친일진상규명법을 꼼꼼이 안살펴보셨나 보군요. 위안부 강제동원자에 대한 규정이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도 추측이라고 하시니 할말이 없습니다.
이 교수의 주장이 일본을 지나치게 미화시겼다는 님의 주장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된 추측아닙니까?

hi ~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만일 님처럼 전범위패를 없애도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국립묘지도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요?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에 대한 참배를 문제삼는것은 좀 그런것 같은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우리나라 국립묘지와 성격이 다르죠.

그곳은 일반적인 일본인들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의 상징물입니다.

일본의 8.15도 기념일입니다.
패전 기념일이 아니라, 군국주의 해방일입니다.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과
독일 총리가 나치스 휘장을 차고 다니 것과 비슷한 범주의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이 현충일에 국립묘지에 가는 것과는 다르죠.

일본내에서도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문제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헌법소원도 낸 적도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걱정하는 일본인들도 많다는 것과
일본내에서도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됍니다.

그들이 총리가 그냥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를 했다면,
문제시 여기겠습니까?

저 논리는 일본의 우익과 총리의 주장일 뿐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그것에 동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fender의 이미지

brandon wrote:
Quote:
brandon wrote:
Quote: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강제징집도 물론 있었겠지요. 조선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강제징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도 추측성으로 쓰셨군요.

허허~ 친일진상규명법을 꼼꼼이 안살펴보셨나 보군요. 위안부 강제동원자에 대한 규정이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도 추측이라고 하시니 할말이 없습니다.
이 교수의 주장이 일본을 지나치게 미화시겼다는 님의 주장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된 추측아닙니까?


설사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이 1%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조선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그런 조선인에 의한 반민족 행위는 밝힐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 애초에 '친일 진상규명법'이라는게 일제 치하에서 직간접적으로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조선인들의 행적을 명확히 밝히자는게 아니었던가요?

조선인에 의한 위안부 동원이 있었는지 여부가 왜 친일진상규명법을 반대하는 논거로 쓰이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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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만일 님처럼 전범위패를 없애도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 국립묘지도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요?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에 대한 참배를 문제삼는것은 좀 그런것 같은데요.

야스쿠니 신사는 우리나라 국립묘지와 성격이 다르죠.

그곳은 일반적인 일본인들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의 상징물입니다.

일본의 8.15도 기념일입니다.
패전 기념일이 아니라, 군국주의 해방일입니다.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과
독일 총리가 나치스 휘장을 차고 다니 것과 비슷한 범주의 것입니다.

우리 대통령이 현충일에 국립묘지에 가는 것과는 다르죠.

일본내에서도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문제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헌법소원도 낸 적도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걱정하는 일본인들도 많다는 것과
일본내에서도 고이즈미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ㅤㄷㅙㅂ니다.

그들이 총리가 그냥 국립묘지에 가서 참배를 했다면,
문제시 여기겠습니까?

저 논리는 일본의 우익과 총리의 주장일 뿐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그것에 동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헌법소원낸 것은 정교분리와 관련된 내용일텐데요.
그리고 거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사람들과 -에이급전범제외-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요?
전 통 이해가 되지 않네요.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헌법소원낸 것은 정교분리와 관련된 내용일텐데요.
그리고 거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사람들과 -에이급전범제외-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요?
전 통 이해가 되지 않네요.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6&dir_id=6&docid=54179

네이버 지식인 내용입니다.

A급 전범만이 아니라 천황에 충성하는 군국주의적 사상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중에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겁니다.

8.15 이야기를 꺼낸 것도 같은 맹락이구요.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헌법소원낸 것은 정교분리와 관련된 내용일텐데요.
그리고 거기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사람들과 -에이급전범제외-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요?
전 통 이해가 되지 않네요.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6&dir_id=6&docid=54179

네이버 지식인 내용입니다.

A급 전범만이 아니라 천황에 충성하는 군국주의적 사상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중에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겁니다.

8.15 이야기를 꺼낸 것도 같은 맹락이구요.


자꾸 일본인들중에 많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많길래..
고이즈미가 과연 미쳤다고 국내 반발 무시하며 거기 갈까요?
(뭐 우익이 대부분이다 라고 하신다면야 어쩔수 없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군국주의의 상징물인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이겠으나 어쨌든 자기 나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을 모신곳인데 우리나라 국립묘지랑 뭐가 다른가 라는 궁금증이 해소가 안되네요.
베트남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았나요?
brandon의 이미지

Quote:
설사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이 1%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조선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그런 조선인에 의한 반민족 행위는 밝힐 필요가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 애초에 '친일 진상규명법'이라는게 일제 치하에서 직간접적으로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조선인들의 행적을 명확히 밝히자는게 아니었던가요?

조선인에 의한 위안부 동원이 있었는지 여부가 왜 친일진상규명법을 반대하는 논거로 쓰이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점은 저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만, 토론을 시청한 결과에 따르면 이교수가 가지고 온 조선 총독부 인명부(?)라는 책자에 약17만명의 인명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 총독부 소속이거나 직간접적으로 협조한 사람들 이겠죠. 그리고 수십년을 통털어 따지자면 수십만명이 되겠죠.

이점을 두고 그동안 학자들이 친일진상 규명을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반문을 하더군요. 너무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눈앞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많은 인원들의 진상을 규명해서 어찌할 것이냐는 거죠. 물론 진상규명법상으론 특정한 지위가 언급이 되어있지만, 그런식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인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로 비유를 하자면 부장까지는 친일파고 차장부터는 아니고... 이런식이 될수밖에 없지 않겠냐라는 것이죠.

hi ~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자꾸 일본인들중에 많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많길래..
고이즈미가 과연 미쳤다고 국내 반발 무시하며 거기 갈까요?
(뭐 우익이 대부분이다 라고 하신다면야 어쩔수 없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군국주의의 상징물인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이겠으나 어쨌든 자기 나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을 모신곳인데 우리나라 국립묘지랑 뭐가 다른가 라는 궁금증이 해소가 안되네요.
베트남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았나요?

http://www.cc.matsuyama-u.ac.jp/~tamura/yasukunisojyou.htm
헌법소원 내용입니다. 일본에 대해서 아시는 것 같아 번역은 생략합니다.
http://www.dpj.or.jp/seisaku/naikaku/BOX_NA0001.html
정부각료의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 민주당의 이견 표명내용입니다.

http://search.goo.ne.jp/web.jsp?TAB=&MT=%B0%C2%B9%F1%BF%C0%BC%D2+%C1%ED%CD%FD&web.x=40&web.y=6
이것은 일본의 goo.ne.jp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키워드로 검색한 URL입니다.
일본내에 분위기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리라 봅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자꾸 일본인들중에 많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많길래..
고이즈미가 과연 미쳤다고 국내 반발 무시하며 거기 갈까요?
(뭐 우익이 대부분이다 라고 하신다면야 어쩔수 없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군국주의의 상징물인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이겠으나 어쨌든 자기 나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호국영령들을 모신곳인데 우리나라 국립묘지랑 뭐가 다른가 라는 궁금증이 해소가 안되네요.
베트남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았나요?

http://www.cc.matsuyama-u.ac.jp/~tamura/yasukunisojyou.htm
헌법소원 내용입니다. 일본에 대해서 아시는 것 같아 번역은 생략합니다.
http://www.dpj.or.jp/seisaku/naikaku/BOX_NA0001.html
정부각료의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 민주당의 이견 표명내용입니다.

http://search.goo.ne.jp/web.jsp?TAB=&MT=%B0%C2%B9%F1%BF%C0%BC%D2+%C1%ED%CD%FD&web.x=40&web.y=6
이것은 일본의 goo.ne.jp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키워드로 검색한 URL입니다.
일본내에 분위기를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시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님께선 호국영령들이란 말에 대해서도 동의할수 없다는 말인가요?
야스쿠니신사에 모신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고.
그건가요?
neonrain의 이미지

brandon wrote:

이점은 저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만, 토론을 시청한 결과에 따르면 이교수가 가지고 온 조선 총독부 인명부(?)라는 책자에 약17만명의 인명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조선 총독부 소속이거나 직간접적으로 협조한 사람들 이겠죠. 그리고 수십년을 통털어 따지자면 수십만명이 되겠죠.

이점을 두고 그동안 학자들이 친일진상 규명을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반문을 하더군요. 너무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눈앞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 많은 인원들의 진상을 규명해서 어찌할 것이냐는 거죠. 물론 진상규명법상으론 특정한 지위가 언급이 되어있지만, 그런식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인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회사로 비유를 하자면 부장까지는 친일파고 차장부터는 아니고... 이런식이 될수밖에 없지 않겠냐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같은 범죄라도 악질의 정도에 따라, 의도에 따라, 고의 등에 따라 범죄에 부여하는 형량이 다릅니다. 같은 범죄자인데 범죄자들이 너무 많고 지위 등으로 재단하는것이 좋지 않다고 모든 범죄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거 아닌가요?

어느 정도의 악질 범죄자를 어떤 수위로 처벌할 것인지 하는 법은 차차 가다듬으면 되는데, 왜 그 법을 만드는 자체를 거부할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님께선 호국영령들이란 말에 대해서도 동의할수 없다는 말인가요?
야스쿠니신사에 모신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고.
그건가요?

아뇨... 호국영령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야스쿠니신사의 목적이 천황에 충성을 다하여 목숨을 받친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신사이고,
여전히 그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죠.

참고로, 일본에서 천황에 충성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극우=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이런 말을 사용안하죠.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님께선 호국영령들이란 말에 대해서도 동의할수 없다는 말인가요?
야스쿠니신사에 모신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고.
그건가요?

아뇨... 호국영령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야스쿠니신사의 목적이 천황에 충성을 다하여 목숨을 받친 이들
영혼을 달래기 위해 사용되었던 신사이고,
여전히 그 상징적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죠.

참고로, 일본에서 천황에 충성한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극우=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과거 천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 아닌가요?
복잡할건 없는것 같은데요.
sangu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님께선 호국영령들이란 말에 대해서도 동의할수 없다는 말인가요?
야스쿠니신사에 모신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고.그건가요?

http://www.j-cafe.pe.kr/others/kinennbi/essay/nazemonndai.htm

Quote:
2.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을 모시는 건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인데 왜 유독 야스쿠니 신사만 문제가 되는 건가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전사자 명부에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한국을 합병하고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나치 독일과 함께 전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실은 잘 아시죠?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자인 연합국은 전쟁을 일으켰거나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가운데 당시 총리로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한 도조 히데키등 핵심인물 25명을 A급 전범이라 부릅니다. 이들 중에서 사형을 당한 7명과 감옥에서 숨진 7명이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 포함된 거죠.

이들이 전범 중 가장 죄가 큰 A급 전범입니다.
그러니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절을 한다는 것은 곧 A급 전범의 혼령 앞에서 일본인을 대표해 존경과 추모의 뜻을 표시하는 셈이 되죠.
전사자의 유족이나 후손이 개인적으로 참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참배는 또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특히 피해자였던 한국.중국 입장에선 더욱 문제가 되죠.

3.일본 국내의 여론은 어떤지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태평양전쟁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동원돼 목숨을 잃었고,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는 원자폭탄 공격까지 받았죠.
A급 전범들은 일본을 전쟁으로 이끈 책임자들이므로 총리가 참배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또 총리가 종교기관인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참배할 때 손뼉을 두번 치는 신도의 전통적인 참배방식을 따르지 않고 묵념만 한 것은 그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참배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엔 비록 소수이지만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우요쿠'(右翼)라 불리는 극우파 단체들이죠.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A급 전범들을 영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이웃나라들의 비판을 남의 집안일에 참견하는 '내정간섭'이라고 여겨 불쾌해 하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전범일지라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의견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본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5. 그럼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까요?

일본에서도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법인이 아닌 특수법인으로 전환시켜 위헌소지를 없애거나 별도의 국립묘지를 마련하는 방안도 나왔습니다.
또 고이즈미 총리의 지시로 자문기구인 '추모와 평화를 위한 기념시설을 생각하는 간담회'가 만들어져 올 12월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A급 전범과 다른 전몰자 명부를 따로 보관할지 여부입니다.
이를 분사(分祀)라고 하지요. 하지만 유족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고가 마코토(古賀誠) 일본유족회 회장에게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되지 않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지면 나부터 참배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6.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혼령 중엔 한국인도 있다는데요.

그렇습니다. 태평양전쟁 때 군대에 끌려갔다가 희생당한 한국인 2만1천명의 명부도 보관돼 있습니다. 대만인도 2만7천명이 있구요.
한국의 유족들은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googlejoa의 이미지

sangu wrote: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님께선 호국영령들이란 말에 대해서도 동의할수 없다는 말인가요?
야스쿠니신사에 모신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 아니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호국영령들이고.그건가요?

http://www.j-cafe.pe.kr/others/kinennbi/essay/nazemonndai.htm

Quote:
2.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을 모시는 건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인데 왜 유독 야스쿠니 신사만 문제가 되는 건가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전사자 명부에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한국을 합병하고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나치 독일과 함께 전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실은 잘 아시죠?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자인 연합국은 전쟁을 일으켰거나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가운데 당시 총리로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한 도조 히데키등 핵심인물 25명을 A급 전범이라 부릅니다. 이들 중에서 사형을 당한 7명과 감옥에서 숨진 7명이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 포함된 거죠.

이들이 전범 중 가장 죄가 큰 A급 전범입니다.
그러니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절을 한다는 것은 곧 A급 전범의 혼령 앞에서 일본인을 대표해 존경과 추모의 뜻을 표시하는 셈이 되죠.
전사자의 유족이나 후손이 개인적으로 참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참배는 또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특히 피해자였던 한국.중국 입장에선 더욱 문제가 되죠.

3.일본 국내의 여론은 어떤지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태평양전쟁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동원돼 목숨을 잃었고,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는 원자폭탄 공격까지 받았죠.
A급 전범들은 일본을 전쟁으로 이끈 책임자들이므로 총리가 참배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또 총리가 종교기관인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참배할 때 손뼉을 두번 치는 신도의 전통적인 참배방식을 따르지 않고 묵념만 한 것은 그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참배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엔 비록 소수이지만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우요쿠'(右翼)라 불리는 극우파 단체들이죠.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A급 전범들을 영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이웃나라들의 비판을 남의 집안일에 참견하는 '내정간섭'이라고 여겨 불쾌해 하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전범일지라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의견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본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5. 그럼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까요?

일본에서도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법인이 아닌 특수법인으로 전환시켜 위헌소지를 없애거나 별도의 국립묘지를 마련하는 방안도 나왔습니다.
또 고이즈미 총리의 지시로 자문기구인 '추모와 평화를 위한 기념시설을 생각하는 간담회'가 만들어져 올 12월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A급 전범과 다른 전몰자 명부를 따로 보관할지 여부입니다.
이를 분사(分祀)라고 하지요. 하지만 유족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고가 마코토(古賀誠) 일본유족회 회장에게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되지 않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지면 나부터 참배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6.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혼령 중엔 한국인도 있다는데요.

그렇습니다. 태평양전쟁 때 군대에 끌려갔다가 희생당한 한국인 2만1천명의 명부도 보관돼 있습니다. 대만인도 2만7천명이 있구요.
한국의 유족들은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님께선 지금 저와 의견을 교환하는 분과의 얘기를 읽지 않고 계십니다.
에이급전범은 제외된 상태입니다.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과거 천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 아닌가요?
복잡할건 없는것 같은데요.

다시한번 8.15가 군국주의 해방일인 점을 강조해야 할까요?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fibonacci의 이미지

brandon wrote:

또 한가지 잘못된 점을 시정하자면 단발령은 일본에 의해서 된것이 아니고 구한말 을미개혁으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 을미사변 - 이후 친일 개화파 김홍집 내각이 을미개혁을 단행했죠. 일본이 전혀 관계가 없었을까요? 을미개혁이 우리나라 반일 의병활동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시는지.

No Pain, No Gain.

sangu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님께선 지금 저와 의견을 교환하는 분과의 얘기를 읽지 않고 계십니다.
에이급전범은 제외된 상태입니다.

에이급 전범이 제외된 상태라는 것이 무슨 말씀이시지요?

http://www.j-cafe.pe.kr/others/kinennbi/essay/jinnjawa.htm

Quote:
본전에는 레이지보(靈璽簿)라 하여 각종 전쟁에서 숨진 사람 2백46만여명의 명부가 보관돼 있습니다. 여기에 A급 전범 14명이 포함된 건 1978년의 일입니다.

지리즈의 이미지

sangu wrote:

에이급 전범이 제외된 상태라는 것이 무슨 말씀이시지요?

제가 A급 전범의 위패 안치여부와 상관없이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화제에서는 빠졌죠...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fibonacci의 이미지

brandon wrote:
Quote:
brandon wrote:
Quote:
피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고 그들이 강제 징집을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반박 근거가 됩니다.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강제징집도 물론 있었겠지요. 조선의 적극적인 협조 없이 강제징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번에도 추측성으로 쓰셨군요.

허허~ 친일진상규명법을 꼼꼼이 안살펴보셨나 보군요. 위안부 강제동원자에 대한 규정이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도 추측이라고 하시니 할말이 없습니다.
이 교수의 주장이 일본을 지나치게 미화시겼다는 님의 주장이야 말로 정말 제대로된 추측아닙니까?

제가 말을 좀 해야 겠군요. 이교수는 위안부에 대해 언급할때, '업소'란 말을 즐겨쓰죠. 이는 위안부들이 '업소'에서 자발적으로 일한 것 처럼 생각하게끔 하는 단어 선택입니다. 그리고 미아리 얘기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비하하고 있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일본이야 말로 여성 가학적 변태 성문화의 지상 메카일 것입니다. 세상에 강간게임을 만들어 파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찬양해야 미화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격하시켜서 상대방에 대한 흠집을 없애는 것도 미화의 일종이죠.

No Pain, No Gain.

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과거 천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 아닌가요?
복잡할건 없는것 같은데요.

다시한번 8.15가 군국주의 해방일인 점을 강조해야 할까요?

논점을 회피하시는군요.
군국주의를 강조하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시대가 어떠하든 자신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호국영령으로서 그 영혼을 달래는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님께선 그들이 추모의 대상이 될수 없다는 말인가요?
이 부분만 답변해 주시면..

지리즈의 이미지

신사참배와 일본 군국주의, 그리고 일본인들의 생각에 즈음해서 질문하지요...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한 최대의 피해국은 어딜까요?

한국일까요? 미국일까요?
중국일까요? 대만일까요?

정답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유일한 원폭 피해국입니다.
(물론 6.25를 일본 군국주의의 연장에서
해석한다면, 한국이 될수도 있지만요)

일본인 스스로 군국주의의 폐해에 대한
뼈저린 아픔을 가장 많이 느낀 국민입니다.

일본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지,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에 이웃집의 토토로의 세계적인 만화감독 " 미야자와 하야오"가 방한했을때,
한국기자들이 알본 정부의 사죄문제 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국민들에게도 사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답변했지요...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일본 우익과 총리의 주장과 같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googlejoa의 이미지

지리즈 wrote:
신사참배와 일본 군국주의, 그리고 일본인들의 생각에 즈음해서 질문하지요...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한 최대의 피해국은 어딜까요?

한국일까요? 미국일까요?
중국일까요? 대만일까요?

정답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유일한 원폭 피해국입니다.
(물론 6.25를 일본 군국주의의 연장에서
해석한다면, 한국이 될수도 있지만요)

일본인 스스로 군국주의의 폐해에 대한
뼈저린 아픔을 가장 많이 느낀 국민입니다.

일본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지,
이해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에 이웃집의 토토로의 세계적인 만화감독 " 미야자와 하야오"가 방한했을때,
한국기자들이 알본 정부의 사죄문제 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국민들에게도 사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라고 답변했지요...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일본 우익과 총리의 주장과 같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그것이 에이급전범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빠질경우에도 과연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하지 말자고 할까요?
어쨌든 일본인들의 생각이야 그들에게 맡기고 님의 생각을 듣고 싶은 겁니다.
님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일본인에게 있어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논점을 회피하시는군요.
군국주의를 강조하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시대가 어떠하든 자신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호국영령으로서 그 영혼을 달래는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님께선 그들이 추모의 대상이 될수 없다는 말인가요?
이 부분만 답변해 주시면..

그들이 호국영령인지 여부, 혹은 호국영령을 달래는 행위는 상관없이,
야스쿠니는 안됀다는 겁니다.
그 외관상의 이유와 어떠하든,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천황에 충성함을 의미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일본 호국영령을 달랜다는 핑계로,
야스쿠니 참배(천황에 대한 충성)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개혁파인 코이즈미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우익세력을 달래기 위한 한낫 정치 쇼에 불가합니다.

총리의 신사참배에
누가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누가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를 보면,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가지는 본질적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fibonacci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지리즈 wrote:
googlejoa wrote:
그러니까 과거 천황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 아닌가요?
복잡할건 없는것 같은데요.

다시한번 8.15가 군국주의 해방일인 점을 강조해야 할까요?

논점을 회피하시는군요.
군국주의를 강조하는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시대가 어떠하든 자신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호국영령으로서 그 영혼을 달래는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님께선 그들이 추모의 대상이 될수 없다는 말인가요?
이 부분만 답변해 주시면..

제가 답하죠.
독일에서 히틀러는 범죄자일뿐입니다.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독일에서 히틀러를 추모하는 사람들은 신나치즘을 신봉하는 사람들 정도겠죠.
일본의 A급 전범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2차 세계대전을 정당화하는 세력들은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추모를 하고 있죠.
일본과 독일의 차이라면, 일본은 집권세력이 아직도 전범을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전범이 무엇인지 공부좀 하셔야 하실것 같습니다.

No Pain, No Gain.

지리즈의 이미지

googlejoa wrote:
저는 그것이 에이급전범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빠질경우에도 과연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하지 말자고 할까요?

네... 여전히 많은 일본인들은 반대할 겁니다.
googlejoa wrote:
어쨌든 일본인들의 생각이야 그들에게 맡기고 님의 생각을 듣고 싶은 겁니다.
님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일본인에게 있어 추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생각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천황은 야욕을 위해 수많은 동족과 이웃나라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범중의 전범입니다.

There is no spoon. Neo from the Matrix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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