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자화상

차리서의 이미지

수 년 동안 vim을 써왔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다지 깊게 깨우친 것도 아니어서, 이 참에 emacs나 다시 한 번 알아볼까 싶어서 cygwin의 emacs을 띄워보았습니다. 즉시, 당연히, 그리고 엄청 자연스럽게,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그게 있는줄 알았다는 듯이 Tools → Games 메뉴부터 누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무섭습니다. :roll:

Multiplication Puzzle이라는 것이 있더군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E E H
                 Number of errors (this game): 0
   x  H G
  -------
  D G I I
                      Number of completed games: 4
F C E G
---------             Average number of errors: 0.00
A F E C I

처음 몇 판을 즐겁게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궁극의 점수(단 한 번의 오류도 없이 알아맞히기)를 받고나자 곧 싫증이 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걸 왜 풀고 앉아있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슬슬 재미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종류의 문제는 전형적으로 '기계가 참 잘하고, 응당 기계가 해야하는 기계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절대로 하기 싫습니다:
  • 기계가 "풀어라!"라고 하면 사람이 "예"하고 푸는게 아니라
  • 사람이 "풀어라"라고 하면 기계가 "예"하고 푸는게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고 emacs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입니다! :evil:

간단한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모듈도 없는 통짜 소스에 Makefile도 없고 컴파일 옵션도 없습니다. 귀찮아서 그냥 막 짰습니다. 휴리스틱? 그딴 것 없습니다. 단순 무식의 최고봉 Brute-Force입니다. 지금 유일한 관심사는, 사람인 제가 기계에게 "풀어라"라고 시키면 기계가 "예"하고 푸는 꼴을 꼭 보고야말겠다는 것 뿐입니다. 왠지 살짝 삐졌거든요. 아~ 맘상해~

[차리서@ws mulpuz]$ ./mulpuz EEHHGDGIIFCEGAFECI
Digits used: ACDEFGHI (8 kinds)
Now trying:  05967421 ...
Now trying:  10946375 ...
Now trying:  16903875 ...
Now trying:  21870643 ...

A=2, C=6, D=4, E=5, F=1, G=9, H=3, I=7

    E E H      5 5 3
   x  H G     x  3 9
  -------    -------
  D G I I    4 9 7 7
F C E G    1 6 5 9
---------  ---------
A F E C I  2 1 5 6 7
[차리서@ws mulpuz]$

냐하하하하하! :P 이제 풀라고 시키니까 풉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까불고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어서 몇 번 더 시켜봤습니다. "예"하고 풉니다. 통쾌합니다. 자꾸자꾸 시켜봤습니다. 그러다보니 슬슬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걸 왜 시키고 앉아있지?'

이제 재미 없어졌습니다. 그만두렵니다. 불쌍한 컴퓨터를 괜시리 고문하는 일 따위보다 훨씬 더 건설적인 일이 많고, 시간은 별로 없거든요. 예를 들어, 애초에 계획했던 emacs 공부나 더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Multiplication Puzzle' 다음 항목은 'Snake'로군요.

[/]
codebank의 이미지

:)
저도 한번 깔아보고 싶게 만드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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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되세요.

galien의 이미지

yup,
j00 r a 933k.
:twisted: